근대의 이름난 인류학자였던 석남石南 송석하宋錫夏(1904~1948)가 어느 날 철원에 갔다.
지금은 군사분계선 안에 폭 갇혀버린 궁예弓裔의 옛 도읍 풍천원楓川原에 들렀는데
마침 그 토성 동쪽에 '웅장하고도 우아한' 오층석탑 하나가 오롯이 서 있었던 모양이다.
감탄하면서 보다가 하나 흠을 발견한다.
워낙 오래되었으니 잇대었던 돌과 돌 사이 틈이 버쩍 벌어져있던 모양.
석남은 무심코 굴러다니던 기왓장을 들고 그 틈을 찔러본다.
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누군가가 나타난다(대화는 필자가 현대어로 되도록 풀었으나 일부 원문을 남겼다).
"노형老兄은 어디 사시오?"
"예, 서울 삽니다."
"누구시오?"
"송석하올시다."
"무엇 하러 댕기시오?"
"이 친구가 '刑事 밋친광인가(원문을 그대로 옮김)' 묻기는 왜 이리 파고 물으시오?"
"여보오, 그러면 내 묻는 것은 잘못이라 하더라도 노형은 왜 남의 동네를 망하게 하려는 심술을 부리는 것이오?"
석남은 기가 막혔다. 그가 한 게 뭐 있다고?
"아니 내가 언제 당신 동네를 망하게 하려 한답니까?"
"아하, 아직 소문도 모르는군. 다름이 아니라 이 탑 사이에 돌을 끼우면 저 아랫동네에 'XX질하는 계집애가 난다구(원문을 그대로 옮김)' 절대로 못하게 한다오."
"예, 예 잘 알았습니다. 난 몰랐지요. 대단히 잘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뒤라도 조심하시오."
쩔쩔매는 석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기야 인류학이건 민속학이건, 필드워크 곧 현지조사를 나간다고 하면
그 ABC가 현지 주민들을 존중하며 진행하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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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석남 송석하 전집 - 한국 민속의 재음미> 下, 국립민속박물관, 2004, 715~716쪽에 실린 "민속채방잡기民俗採訪雜記 3"에 의거했습니다.
이 전집 자체에 대해서도 참으로 할 말이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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