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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병철(1817-1863)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게 누군데?"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예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고위 관료였다.
이는 그의 타고난 재주와 더불어 그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점인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외손이라는 정치적 입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헌데 그러면서도 그는 동생 남병길(南秉吉, 1820-1869)과 함께 조선 후기를 주름잡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역사에 더 큰 발자취를 남겼다.
남병철이 서른일곱살 되던 1853년 음력 정월 16일 쓴 간찰이다.
남병철은 이날 경상감사에 제수되는데, 아마 교지를 받고 바로 썼던 듯 필치가 상당히 급하다.
수신인은 외종外從인 평안감사인데, <철종실록>에 따르면 이때 평안감사는 김병기(金炳冀, 1815-1878)였다.
김병기는 김조순의 손자(양자로 들어왔지만)니 남병철과 내외종간이 된다. 사촌지간에 주고받는 간찰이라 그런지 남들을 의식 안한 듯 글자가 퍽 시원시원하다.
추사체 느낌도 살짝 나는데, 그 동생 남병길이 추사 문하에 노닐었던 걸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일이다.
추사가 남병길에게 '유재留齋'란 호를 지어주면서 써준 현판이 지금도 남아있고, 남병길은 추사 사후 그의 유고를 모아 문집을 발간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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