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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그럼에도 지도 읽기의 즐거움이란!

by 느린 산책자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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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는 여러 전공자가 있다. 고고학과 미술사, 사학부터 서지학, 도시공학, 건축학 등등. 학교 다닐 때는 회화사와 도자사 전공 사이에도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다른 점이 느껴졌다. 미술사 안에서 나뉘는 세부 전공 사이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하물며 타 전공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성격은 차치하고, 박물관 내 각 전공자가 느끼는 즐거움은 분명 다르다. 직장 일과 내 즐거움이 최적화된다면 그것이 가장 즐거운 직장 라이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곳에서 가장 즐거울 사람들은 지도를 사랑하는 도시공학 또는 건축 전공자일지도 모르겠다. 공간을 공부하는 이들이라 그런지, 새로운 지도를 볼 때마다 눈빛을 반짝이는 것이 나와는 매우 다른 종족이다. 


지도는 지겨워! 
내 전공은 공간과 그다지 관계가 없다. 내 기질이 원래 그런 것인지 혹은 6년간 교육 과정에서 후천적으로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예쁜 것’을 사랑한다. 내 기준으로는 지도는 예쁘지 않다. 똑같은 모양을 하고 화려한 색으로 칠한 것도 아니고, 이 지도가 저 지도처럼 보이고 똑같이 보인다. 지도를 볼 때의 나는 일반인과 거의 같다. 

나는 공간 감각도 없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일도 영 젬병이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가도, 거꾸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 보니 이쪽 재능은 전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처음 시작하는 것은 지도에서 위치를 찾아보는 것이다. 늘 똑같은 지도 위에서 위치를 표시하고, 행선을 표시하고 이런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말하곤 했다. 

“지도 너무 싫어! 지긋지긋해!”

과장이 아닌,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가끔은 지도 보는 것이 재밌기도 
그런데 웃기게도 가끔은 지도 보는 것이 즐거울 때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도가 너무 싫어요!”라고 말한 지 어언 7년이 되었기에, 이런 변화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다. 뭔가 진 것 같은 느낌?!

“사실은 지도 보는 것이 조금은 재밌어졌어요.”라고 하면, “그렇지? 이제 너도 알게 되었구나.”라는 것 같은 눈길을 보는 것이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지도를 보는 즐거움이 생겨난 이유 중 하나는 내 취향에 맞는 지도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귀여운 그림체로 랜드마크를 그린 관광지도 같은 것들 말이다. 천편일률적인 지도를 보다가 이런 지도를 보게 되면, 한편으로는 숨이 쉬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지도는 지도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지도가 아닌 모양이다. 전시를 준비할 때, 모 선생님에게 “이 지도 너무 귀엽죠? 그래픽으로 엄청 크게 붙일 거에요.”라고 하니,

“이 지도는 별로에요. 정확한 정보가 없잖아요.”라고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지도 덕후와 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지도를 보는 즐거움은 또 다른 방면에서 생겨났다. 지금의 공간이 왜 이렇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갈 때다. 나는 광화문 사거리를 지날 때마다 보이는 삼각형 건물(바디샵과 고디바가 있는 건물)은 왜 저렇게 지었을까 하며 궁금해 했다. 어느 날, 지도를 보다보니 그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육조거리 모형. 모형 안을 보면 경복궁 옆으로 내려오는 청계천의 지천이 대로와 마주하는 그 곳, 그 옆은 어쩔 수 없이 삼각형을 이루게 된다. 지금의 바디샵 건물이 있는 곳이다. 바디샵 건물 사진을 찍질 못해서 일단 이렇게나마설명을... (죄송합니다 흑흑)


‘아. 지천 때문에 옛날부터 이곳은 이렇게 삼각형 필지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구나.’하고. 

종로나 창경궁, 창덕궁쪽의 길이랄지, 사대문 안 길들을 보면 새롭게(나에게만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생겨나니 즐겁다.

이렇게 옛날부터 내려오던 땅의 성격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을 보게 되면, 옛날과 지금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국유지였던 곳은 그 땅에 있는 건물들의 성격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더 그런 느낌이 드는 듯도 하다. 물론 대규모 개발을 하게 되면 필지가 다 합쳐지니, 이런 곳들은 앞으로 많이 없어지게 되겠지만. 그래도 이런 곳들을 보게 되면, 서울이라는 곳의 역사가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기분이다.

매우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지도 문외한으로 느끼는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그래서 매우 소심히 말해 본다. 

“가끔은 지도 보는 것이 재미있어요.”라고. 

‘(서울)지도를 보는 것’은 ‘서울을 보는 것’과 연결되니, 이제야 조금은 ‘서울 읽기’가 즐거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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