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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일단 시작은 지도부터, 그렇지만 지도는 싫어요.

by 느린 산책자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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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번 똑같은 일을 하기 싫어했다. 쥐뿔 아는 것도 없는데 여기서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없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교수님께 소심하게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게, 저는 대학에서 이런 주입식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는 것도 없는데 토론이 되겠냐며 교수님에게 까였다. 흑흑) 늘 말하기 주저하는 내 성향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늘 의심도 많았다. 초등학생 때, 이승복 어린이 일화를 읽으면서 ‘이거 거짓말 아냐? 나 같으면 무서워서 숨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거 쓰면 나이대가 유추되는 것 아닌가요? 하하) 물론 선생님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일하면서 가장 지겨웠었던 것
일하면서 이러한 나의 성질머리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공식처럼 반복되는 전시가 너무 싫었다. 연표로 시작해서 조선시대, 현대로 넘어가는 전시 틀이 지겨웠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지긋지긋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도!
우리 박물관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자, 우리 매니아층이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게 지도다. 지도를 크게 확대해주면서 그 지역 사진을 띄워주는 실감영상을 만든다면 우리 매니아들은 좋아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지도는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하다. 서울의 장소에 대해 알려주고자 한다면, 일단 그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지리적 감각을 공유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전시장 곳곳에는 지도가 걸려있거나 참고 자료로 제시된다. 심지어 거대한 지도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이 편집증처럼 보이기도 했나 보다. 이전에 함께 전시를 보고 의견을 나누는 프로그램에 일반인으로 몰래 참여했을 때,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곳의 학예사는 지도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한참을 웃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지도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럼에도 지도를 보여주는 이유는 이것이 서울이라는 곳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매개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서울이 무엇이냐를 생각하기 이전, 일단은 서울은 ‘도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자연 속 터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한편으로는 그에 의해 땅이 바뀌고 다시 사람은 그 영향을 받는 순환구조 안에서 도시가 생겨난다. 도시가 이처럼 일종의 생명체 같은 것일진대, 그럼에도 우선 ‘터’가 기반이 되기에 우리는 지도를 먼저 살피게 된다. 

 

# 1존의 시작, 한양지도. 이 지도는 최종현 교수님의 지도(!)하에 만들게 되었다. 교수님이 그리신 펜화를 일러스트를 어찌저찌 배워 그린 후, 몇번이나 크게 출력하여 판화 작가님들께 드리는 작업을 했다. 너무 힘들었던 작업 흑흑흑. 원래는 입체감있게 만드려했지만, 여러 사정상 요렇게 완성되었다.


1존의 처음 시작도 거대한 지도로부터 시작한다.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 사람들이 조선시대 서울이 어떤 지형 안에 들어앉았는지를 시각화한다. 지도의 시점은 한양의 모습이 완성되었다하는 성종 연간이다. 이 시점부터 현대의 서울까지 둘러보면서 관람객들은 서울이 어떻게 바뀌고 성장해나갔는지를 살펴본다. 

관람객들과 처음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 지도다. ‘우리는 이곳을 이야기할거에요.’와 같은 대화 창구 같은 것. 그래서 지도가 너무 지긋지긋하지만, 그럼에도 지도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학예사가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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