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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김대중 정부 가야사 프로젝트가 실패작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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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고분군. 김대중 정부 가야사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리 정비되었다. 

 

김대중 정부 가야사 프로젝트는 실패작인가?


그렇다고 한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토목 공사에 쳐발랐기 때문이라 한다. 연구비는 쥐꼬리만큼 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사업 대상지는 김해에만 국한됐다. 그리고 저 지적 어느 부분은 정당하다. 하지만 연구비가 쥐꼬리였기에 실패작이란 주장 나는 용납 못한다. 연구비는 왜 줘야는가? 누가 말 좀 해봐라.

 

 

정비 이전 대성동고분군과 주변

 

왜 줘야는가?

저 사업 문제점이 많았다는 거 나보다 잘 아는 놈 있음 나와보라 그래.

 

 

2006년 완공한 김해한옥체험관. 역시 가야사 프로젝트 일환이었다. 



한데 저 사업으로 대성동고분군 지금의 부지 상당 부분 사들였다는 거 너희가 아느냐? 대성동고분전시관 저 사업 결과물임을 아느냐 말이다. 니들 죽었다 깨나 봐라. 니들이 뭘 할 수가 있는데? 그 어줍잖은 연구비 투자하느니 문화재구역 땅 한 평 사는 게 백 배 낫다.

대성동고분군 땅 사고, 그 전시관 지은 게 연구 투자 아닌가 말이다.

 
(June 11, 2017) 

 

*** 

 

김해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릉에서 열린 김해 김씨 추향대제에 함께 참석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왼쪽)가 김해 김씨 김영준 종친회장(가운데)과 함께 손을 맞잡고 만세하고 있다. 1997.10.16 연합뉴스. 가야사 프로젝트 출발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가야사를 연구하고 복원하라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가 나오고, 이를 토대로 가사야연구복원이 문재인 정부 국정핵심 100대 과제인가로 선정되자 이를 두고 무수한 말이 있었으니, 이른바 관련 학계에서는 성토 일색이었으니 그 논점 추리건대 역사에 국가가 왜 개입하느냐? 그렇게 개입한 역사 프로젝트치고 순수한 것 없었고, 다 토목으로 흘렀으며, 정작 연구비 투자는 없었다는 논리가 비판의 골자였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곳곳에서 호된 역비판을 가했거니와, 이는 개중 하나다. 나는 정부 주도 혹은 정부 중심 역사학 프로젝트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의 논리를 비판했다. 

 

그것이 실패할 것이며, 실패한 정부 주도 역사프로젝트 사례로 김대중 정부에 의한 가야사 프로젝트를 들었다. 그것이 실패했는가? 나는 실패하지 아니했다고 봤다. 

 

 

1997년 경남 김해에서 열린 추향대제에 참석한 김대중과 김종필. 연합뉴스

 

저와 같은 내 문제제기에 지금은 김해시 산하 대성동박물관장이면서, 당시에는 김해시청에 있었을 송원영 학예연구사가 이렇게 호응했다. 

 

정비사업 전 대성동고분군의 구릉은 무우밭과 비닐하우스 집이, 평지에는 보신탕집과 공장, 폐가, 대규모 쓰레기 적치장 등이 있었습니다. 총 1297억원이 투입되었는데, 그중 가야문화연구, 유적발굴 등 기초조사연구비에 73억. 사적 등 부지매입에 547억이, 대성동고분정비및 전시관 건립 등에 513억이, 유적연결로 조성 등 기반조성비에 164억이 들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내내 추진한 가야사 프로젝트는 실은 김해 일대 금관가야 중심이었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DJP 연합과 밀접하다. 대선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진 김대중은 그 필생의 라이벌 YS가 3당 연합(실제는 야합이라 하지만)을 통해 마침내 집권했듯이, 그 역시 종래의 노선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대연합을 구상하게 되는데, 보수의 수령들인 김종필, 박태준과 손을 잡았으니, 이것이 바로 DJP 연합이다. 

 

이 연합 지도부를 형성한 김대중과 김종필, 특히 후자는 한국최대 문중 김해김씨를 주목하거니와, 그 뿌리가 가락국 김수로왕이라, 가락김씨, 곧 김해김씨 시조가 김수로이며, 그의 본향이 김해, 더구나 김해에는 그와 그의 왕비 허황옥을 묻었다는 무덤이 있는 까닭에 대선 운동과정에서 두 사람이 김수로왕릉을 참배하는 일대 이벤트를 기획한다. 

 

 

김종필 총리서리가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열린 백제역사 재현단지 기공식에 참석, 금동향로에 분향하고 있다. 1998.4.21. 연합뉴스

 

이것이 김해김씨 문중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얼마만한 위력을 발휘했는지 모르나, 그에서 비롯되어 김대중은 집권과 더불어 곧장 가야사 프로젝트를 국가시책을 시작한다. 반면 김종필은 자신의 입지를 공고화하고자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나, 자신의 본향 부여를 주목하거니와, 바로 백제역사재현단지라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김대중 정부시절 김해 중심 가야사 프로젝트와 부여 중심 백제역사재현단지 조성은 정부가 주도한 대규모 역사 프로젝트 양대 산맥이었다. 

 

 

백제역사재현단지

 

김해 가야사 프로젝트에 김대중 정부는 집권기간 내내 총 1천297억원을 쏟아부었고, 개중 73억원을 연구비로 내어놓았다. 당시 역사학계, 특히 고대사학계에는 돈이 홍수 직후 한강의 똥물처럼 흘러넘쳤다. 그 돈 안 받아먹은 역사학도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김대중 정부 가야사 프로젝트를 실패한 사업으로 규정하면서, 연구비는 쥐꼬리만큼이었다고 공개 비판하고 나선 어느 대학 교수 전력을 보니, 저 프로젝트 연구비를 받아쳐먹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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