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와 펜, 연필 따위가 없던 시절
우리네 조상들이 종이나 비단 같은 데에 글씨를 쓰려면 벼루에 먹을 갈아 붓을 적셔야만 했다.
그런 만큼 '벼루'란 문인의 방에 있어야 할 네 가지 보배(문방사보) 중 하나로 존중받았다.
도자기나 기와, 심지어 쇠나 나무로 만든 벼루도 없잖으나, 대부분의 벼루는 돌을 캐서 깎아 만든다.
돌의 성질에 따라 먹이 갈리는 정도가 달라지므로 어떤 돌로 벼루를 만드느냐도 중요한데,
대개 벼루 면에 미세한 요철(봉망)이 있어 먹이 잘 갈리고 먹빛이 잘 우러나며 점도가 적당한,
이른바 발묵이 좋은 걸 "좋은 벼룻돌"이라고 일컫는다.
중국에선 단계석이나 흡주석, 일본에선 시모노세키 쪽 적간관석을 고급으로 친다.
우리나라 벼룻돌로는 압록강가 평안북도 위원의 위원화초석, 두만강가 함경북도 종성의 종성석, 서해안 충청남도 보령의 남포석, 충청북도 진천 상산자석 등을 꼽는데,
그 중 평안남도 평양 대동강가에서 채취한 이른바 대동강석이란 돌이 있다.
청록색을 띄는 이 대동강석은 묘한 무늬가 아롱지는 게 특색인데,
먹을 갈아보면 금방 갈리나 돌결이 지나칠 만큼 부드러워 미끄덩한 느낌마저 준다.
발묵이 그리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는 별로 쓰인 흔적이 없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개발된 듯하다.
지금 전하는 대동강석 벼루 대부분이 일제 때 일본풍 디자인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손바닥 만한 벼루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둥글게 몸체를 만들고 가운데에서 약간 아래 먹을 갈 공간을 두었다.
거기 뚜껑을 얹었는데, 그 위쪽에 평양 경승 모란대를 새겼고 그 주위 대동강과 평양 풍경 약간을 채워넣었다.
근데 뚜껑을 보니 뜬금없이 영어 네 글자가 새겨져있다.
JBBK라...
주어가 없다던 BBK도 아니고 미국 전 대통령 JFK도 아닌, 저 알파벳의 정체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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