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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의 역사와 관련하여,
소위 등자를 쓰는 기마는 도입 시기가 명확한 것으로 안다.
선비족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고구려를 거쳐서 한국, 일본으로 빠져 나간 것으로 알고, 그 증거품도 확연하다.
문제는,
한국사에서 말의 이용과 관련하여
기마 이전 시기에 말이 수레를 끌던 시기가 있었다는 생각인데,
요즘 생각해 보면, 이 수레가 정말 말이 끌었던 것이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재갈이 나오는 유적이 있는 것을 보면 기마 이전에 말을 짐을 수송했건 뭐를 했건 사육했던 것은 확실한데,
그 사육된 말이 정말로 아래와 같은 수레를 끌었을 것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평양에 저런 말이 끄는 수레가 달렸을 것 같지가 않다.
만약 저런 수레가 있었다면 고구려 시대에도 뭔가 비슷한 물건이 달렸을 것 같고,
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 비슷한 말이 끄는 귀인용 수레가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소가 끌었으면 끌었지 말이 끄는 저런 전차형 수레가 돌아다녔을 것 같지가 않다.. 는 뜻이다.
일본의 헤이안시대에는 이미 일본의 기마전술이 완전히 정착하여 말타며 쌈질하고 달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시기인데 그 시기에도 귀인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탔다.
고구려?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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