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기록하다 2수. 정미년(1487, 성종18)에 공이 여전히 관서에 있으면서 지었다. 〔元日記事 二首 丁未年公猶在關西作〕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허백당시집虛白堂集詩集> 제12권 시詩
십여 년 짐 싸들고 변경으로 나돌다가 / 十年書劍走關河
올해는 또 평양에서 새해를 맞았어라 / 又見箕城換物華
장경사의 버들에는 눈이 아직 남았는데 / 殘雪尙餘長慶柳
새봄이 온 대동강에 물결이 또 이는누나 / 新春又發大同波
이른 아침 고을 원들 모두 와서 하례하고 / 早朝鵷鷺盈庭賀
저녁 무렵 친구들이 술병 들고 찾아오네 / 薄暮親朋載酒過
한 도 맡아 다스리니 비록 중한 임무지만 / 分閫保釐雖重任
오운과는 멀고도 먼 해서의 물가로세 / 五雲遙阻海西涯
객관에 귀인들이 비단 방석 깔고 앉고 / 華館犀龜鎭錦茵
기녀들이 세 줄로 앞자리에 진열하니 / 三行紅粉儼前陳
여인들은 편을 갈라 〈포구락〉 춤을 추고 / 羅衫競舞拋毬樂
옥피리는 일제히 〈만전춘〉을 부는구나 / 玉管齊吹滿殿春
부질없이 풍류로써 늘그막에 소일하고 / 謾把風流供晩節
다시 술에 의탁하여 귀한 손님 위로하네 / 更因樽酒慰佳賓
먼 곳에 와 신년회를 함께 열게 되었으니 / 遐邦共作新年會
안 취할 수 없는지라 술잔 자주 들이켜네 / 不醉無歸倒斝頻
[주-D001] 장경사(長慶寺) : 평양성 안에 있던 절이다.
[주-D002] 오운(五雲)과는 …… 물가로세 : 오운은 오색구름으로 대궐을 뜻하며, 해서는 평안도를 가리킨다. 즉 멀리 평안도에서 조정을 그리워하는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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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면 매년 정월초하루 관찰사 주재 신년 하례회가 있었음을 안다. 우선 그가 관할하는 산하 지방 수령들이 모조리 집합하고는 하례를 했으니, 빈손으로 올 순 없는 법,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그에 대한 급부로 감사 또한 무엇인가를 내려야 하는데 이런 언급들은 없다.
낮 혹은 아침에는 아마도 미리 도착했을 고을 군수들이 차례로 하례를 하고, 저녁에는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종일 퍼마셔야 했다.
이들 손님을 맞으러 그 호텔인 객관은 북적였다. 그것을 저 시에서는 "객관에 귀인들이 비단 방석 깔고 앉고 / 華館犀龜鎭錦茵"라 표현했다.
그들의 흥을 돋구고자 기녀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이 편을 갈라 〈포구락〉 춤을 추고 다른 악인들은 피리로 〈만전춘〉을 불어댔다.
저에 소요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으리라. 내가 항상 말했다. 역사를 대할 때는 항상 돈! 돈! 돈! 을 생각하라고 말이다. 조선 경제는 저렇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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