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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성현成俔(1439~1504)이 중국에서 조우한 말레시아 만랄가국인滿剌加國人

by taeshik.kim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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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카 왕국 대략 포진 범위라는데 확실치는 아니한 듯하다.


만랄가국인〔滿剌加國人〕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허백당시집虛白堂集詩集> 제4권 시詩


거친 머리털 칙칙하고 이마 반쯤 새기고 / 鬆髮森森半雕額
추악한 얼굴 온통 칠흑처럼 새카맣네 / 麤容一一渾漆黑
두 뺨 불룩해 언덕보다 높고 / 兩顋磊磈高於丘
깊은 샘마냥 우묵한 눈 귀역 같네 / 深井眼花如鬼蜮
왜가리 괙괙하듯 말은 알아채지 못하고 / 鴃舌啁啾語不辨
절반은 남만인 절반은 서역인 같네 / 半帶南蠻半西域
국경 너머 아득한 수만 리 밖에서 / 絶塞茫茫數萬里
바다에 뜬지 삼년만에 상국 조회하네 / 泛海三年朝上國
오령 이남 모두 들어와 조회하니 / 五嶺以南盡來庭
한 치 하늘 한 자 땅도 다 관할이네 / 寸天尺地入圖籍
흉노 기세 본디 침략 좋아하기에 / 匈奴氣焰本腥羶
천자가 근심하는 바는 오직 북방뿐 / 天子所憂惟北極


[주-D001] 거친 …… 새겼고 : 이마를 새겼다는 것은 옛날 남방 소수민족의 습속으로, 이마 위에 꽃무늬〔花紋〕를 자문(刺文)했던 것을 가리킨다.

[주-D002] 깊은 …… 같은데 : 귀역(鬼蜮)은 귀신과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사람 그림자에 독기를 쏘아 병들게 하는 물속에 사는 독충인 물여우이다. 《시경》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귀신이나 물여우는, 볼 수나 없거니와, 너는 뻔뻔스레 얼굴을 들어, 끝없이 사람을 보는구나.〔爲鬼爲蜮 則不可得 有靦面目 視人罔極〕”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본디 음모로 남을 해치는 자를 비유하는데, 여기서는 추악한 모습을 비유했을 뿐이다.

[주-D003] 격설(鴃舌)이 …… 알아듣겠어라 : 격설은 곧 듣기가 아주 나쁜 왜가리 소리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남만(南蠻) 지방 사람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비유하였다. 맹자가 이르기를 “지금 남만의 왜가리 혀를 놀리는 사람이 주장한 것은 선왕의 도가 아니다.〔今也 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8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을 문맥을 손질하는 선에서 내가 고쳤다.

요런 식으로 비쳤나 보다.



만랄가는 조선초기에는 그 위치와 명칭 정도는 알려졌음이 확실하니, 성현과 대략 같은 시대를 산 최부崔溥(1454~1504)의 《표해록漂海錄》 제1권 무신년(1488, 성종 19) 윤1월 8일 조를 보면 제주를 출발해 이미 망망대해로 표류 중인 그가 뱃사람들한테 타이르는 말로


“내가 일찍이 지도를 열람해 보니, 우리나라 흑산도에서 동북쪽을 향하여 가면 곧 우리나라 충청도와 황해도의 경계이며, 정북방은 곧 평안도와 중국의 요동(遼東) 등처요, 서북방은 곧 옛 우공(禹貢 《서경》의 편명)에 나타나는 청주(靑州)와 연주(兗州)의 경계며, 정서방은 곧 서주(徐州)와 양주(揚州)의 지역이다. 송(宋) 나라 때 고려와 교통할 적에 명주(明州)에서 바다를 건너왔으니, 명주는 곧 대강(大江 양자강揚子江) 이남의 땅이며, 그 서남방은 곧 옛날의 민(閩) 지방으로서 지금의 복건로(福建路)요, 서남방을 향하여 조금 남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가면 곧 섬라(暹羅)·점성(占城)·만라가(滿剌加) 등의 나라요, 정남방은 곧 대유구국(大琉球國)·소유구국(小琉球國)이요, 정남방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면 곧 여인국(女人國)과 일기도(一岐島)요, 정동방은 곧 일본국과 대마주(對馬州)다. 지금 배가 풍랑에 표류된 지 5주야(晝夜)에 서쪽을 향하여 가는데, 생각에는 거의 중국의 땅에 도착되었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불행하게도 또 이 서북풍을 만나서 동남방으로 거슬러 가게 되니, 만약 유구(琉球 류큐. 현재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오키나와의 옛 이름)국과 여인국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해(天海) 밖으로 흘러나가서, 위로 은하수에 닿게 되어 가이 없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니, 어떻게 되겠는가? 너희들은 내 말을 기억하고서 키를 바로잡고 가야만 한다.”


[주-D001] 섬라(暹羅) : 샴(Siam)의 취음(取音)으로 지금의 태국을 말한다.

[주-D002] 점성(占城) : 참파(Champa). 2~15세기에 인도차이나 남동 기슭에 있던 참(Cham)족의 나라이다.

[주-D003] 만라가(滿剌加) : 말라카(Malacca)의 음역(音譯)으로 말레이 반도 서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주-D004] 여인국(女人國) : 부상국(扶桑國). 동쪽에 있는 여자만이 산다는 나라로 곧 일본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구분해서 보았다.

이 모습이 성현이 말하는 그 모습에 조금은 부합한다.


이로 볼 때 이미 최부는 지도를 입수해 만랄가라는 존재와 그 대략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 뒤 《지봉집》 제9권 유구사신증답록琉球使臣贈答錄을 보면 이수광이 신해년(1611, 광해군3)에 연경燕京에 갔을 때 일을 논급하면서 〔부섬라附暹羅〕라 해서 섬라국暹羅國 이야기를 채록했으니


섬라국(暹羅國)은 서남쪽 바다에 있는데, 수로(水路)로 광동(廣東)까지의 거리가 대략 1만여 리가 되고, 광동에서 육로로 북경(北京)까지의 거리가 또 8천 리가 된다. 나라의 성(姓)은 단지 네 개만 있는데 임금의 성은 조씨(照氏)이며, 벼슬아치의 성은 악씨(握氏)이며, 중호(中戶)의 성은 내씨(奈氏)이며, 하호(下戶)의 성은 애씨(隘氏)이다...내가 그 나라 지도를 구하여 살펴보니, 국중國中에는 점분(沾奔)·필가산(必加山)·도뇌곤(島腦綑)·육곤(六昆)·속골태(束骨胎)·상수(上水)·비서록(比西祿)·난장(蘭場) 등 포정사사(布政使司) 8곳이 있는데, 모두 열도(列島)다. 그 속국屬國으로는 점성국占城國·감파국甘坡國·조와국爪哇國·대니국大泥國·가란란국加蘭丹國·시국柴國·팽형국彭亨國·오충국烏沖國·만랄가국滿剌加國·점파국沾波國이 있다. 그 남쪽에는 아자국(雅者國)·동우국(東牛國)·아로국(雅魯國)이 있으며, 그 동쪽에는 순탑국(順塔國)·가랄파국(加剌把國)·백가산국(白加山國)·용송국(龍松國)·마리록국(馬里祿國)이 있다.


라 한 대목이 그것이다.

이후 만랄가는 여러 증언에서 산발로 등장하는데, 연암 박지원 손자인 박규수는朴珪壽는 《환재집瓛齋集》에서 말라카를 ‘마육馬六’이라 표기했다.

만랄가滿剌加 만랄滿剌 마육갑麻六甲 마랄갑麻剌甲 마육갑馬六甲 문노고文魯古와 같은 다른 표기도 보인다.

말라카왕국 왕궁 복원이라는데 난 못 가봤으니 패스


명사明史 권 제325 열전 제213 외국外國6에 만랄가滿剌加를 소개하기를


만랄가滿剌加는 점성 남쪽에 있다. 순풍을 타고 8일이면 용아문(龍牙門)에 이르고, 다시 서쪽으로 2일을 가면 이른다. 혹자는 말하기를 옛날에는 돈손頓遜이었고, 당나라 때는 가라부사哥羅富沙였다고 한다.

滿剌加, 在占城南. 順風八日至龍牙門, 又西行二日卽至. 或云卽古頓遜, 唐哥羅富沙.


주 001
滿剌加: 말라카Malacca 왕국을 일컫는다. 팔렘방Palembang의 왕자인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가 1400년 경에 이 왕국을 건설했다고 하는데, 그가 스리위자야Sriwijaya 왕실 가계의 왕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1377년 마자파힛Majapahit 왕국의 공격으로 팔렘방이 패하자 파라메스와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해상으로 탈출하여 말레이 반도 방향으로 이동하여 이동하였는데, 처음 정착한 곳이 트마섹Temasek 섬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파라메스와라는 사자를 보았다고 하여 이 지역을 ‘사자의 도시’ 또는 ‘사자의 나라’라는 뜻의 싱가푸라Singapura 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의 싱가포르이다. 이후 이들은 1402년에 다시 말라카로 이동하여 말라카 왕국을 세우고 스리위자야를 잇는 해상 국가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말라카의 지배자들은 국제 교역상들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주력하고, 교역 기반시설을 확충했으며, 매우 정교하고 효율적인 법과 행정체계를 세움으로써 해상 왕국으로 흥기할 수 있었다(최병욱, 2006: 290~292). 그러는 동안 1414년에 파라메스와라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자신의 이름을 라자 이스칸다르 샤 Raja Iskandar Shah 로 개명했다. 말라카 왕국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1470년 경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여, 말레이 반도 전역과 수마트라 중동부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후 말라카 왕국은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특히 16세기에 접어들어 말라카 왕실은 내분에 휩싸이고 있을 때인 1511년에 인도 고아 Goa 를 점령한 포르투갈의 아퐁소 드 알부케르케 Afonso de Albuquerque 가 군대를 이끌고 말라카를 공격하여 정복함으로 멸망하였다.

주 002
용아문龍牙門: 능아문凌牙門·농아산문龍牙山門이라고도 칭했는데 지금의 싱가포르 해협을 말한다. 싱가포르 해협은 섬들이 복잡하게 분포되어 통과하기가 힘들다고 해서 龍牙門이라 했다고 한다. 왕대연汪大淵의 《도이지략島夷誌略》 「龍牙門」條에 용아문을 거쳐 서쪽으로 항행하는 것을 두고 “배를 타고 서양으로 간다”라고 했음을 보면, 이 당시 용아문은 東과 西를 가르는 지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임성모 외, 2008: 119).

주 003
돈손頓遜: 동남아에 있던 옛 나라로, 다른 이름으로 전손典遜이라고도 하며, 그 나라가 있던 지역은 지금의 태국 단나사림丹那沙林(Tenasserim) 일대로 알려져 있다. 《양서梁書》 卷54 「제이諸夷」에 보면, “단나사림丹那沙林은 돈손국頓遜國이라 칭하고, 6世紀 初에 부남扶南의 속국屬國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 004
가라부사哥羅富沙: 《신당서新唐書》 卷222 「남만南蠻」下에 “其東南有哥羅, 一曰個羅, 亦曰哥羅富沙羅. 王姓矢利波羅, 名米失缽羅. 累石爲城, 樓闕宮室茨以草. 州二十四”라는 기사가 있거니와 哥羅富沙는 哥羅·個羅·哥羅富沙羅로 불렸으며, 盤盤(Pan Pan)의 동남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 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 이상은 동북아역사재단이 기획한 중국정사 외국전 번역에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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