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진에서 자다〔宿高沙里鎭〕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허백당시집虛白堂集詩集> 제13권 시詩
산에 기댄 성첩이 강 언덕에 자리하고 / 石堡憑山枕水崖
성안엔 수십 가구 백성들이 사는 이곳 / 城中數十吏民家
오랑캐 막느라 밤마다 야경 돌고 / 防胡夜夜鳴刁柝
조 심으려 사람마다 자갈밭 개간하네 / 種粟人人墾石沙
숲속엔 조롱조롱 신 자두 열렸는데 / 苦李林間多結子
바위 아래 고사리는 이미 세어 버렸네 / 芳薇巖底已剛芽
변방 지역 경물이란 어찌 이리 암담한지 / 邊庭景物何愁慘
나그네 시 지으며 자꾸만 탄식하네 / 過客詩成屢發嗟
[주-D001] 고사리진高沙里鎭 :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고산리高山里로 되어 있다. 평안도 강계에 속한 거진巨鎭으로, 병마첨절제사를 두었다.
[주-D002] 間 : 대본에는 ‘日’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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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번역은 내가 약간 손댔다. 이 당시 성현은 평안도관찰사로 관내를 순시 중이었으며, 그 길에 저 변방 강계 고사리진이라는 데서 하룻밤을 묵으며 감발한 바를 저리 정리했다.
성이라고 하지만, 보루에 가까웠으니,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이라 해 봐야 수십 가구라 했으니, 백명 남짓 살았으리라.
변방이라 여진 침입이 언제나 걱정이었으니, 밤마다 야경을 돌았으니 그 고초 알 만하다.
"조 심으려 사람마다 자갈밭 개간하네"..이 말은 아마도 둔전을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 저런 최일선 군대 마을 보급품은 자체 조달해야 했다. 그러니 자갈밭이라도 개간해서 조라도 심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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