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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기어이 곤장 맞고 죽은 쪽집게 과거시험 대리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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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험 대비용 모범답안집을 보다>

과거를 치르려면 경전과 시서에 통달해야하는 것은 기본이요, 과거에만 쓰이는 양식의 시와 문장에 익숙해야했다.

시의 경우 과시 또는 공령시라 했고 문장은 과부라고 했다.

이는 엄청나게 형식화해(중국 명청대의 팔고문만큼은 아니지만) 채점하기는 편했지만 제대로 된 시문으로 평가받기는 힘들었고 문집 같은 데서도 산삭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과거를 치르려면 꼭 필요했기에 선비들은 이런 과시들을 손수 베껴 익혔다. 과거 모범답안집을 만든 것이다.

가끔은 그런 데서 퍽 의미있는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이 사진이 그 한 예인데, 이는 17세기 문인인 이재영(1553-1623)이 지었다는 과시이다.

그는 서출이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군공을 세워 면천되고 정시문과에 장원할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다.

그를 조선통신사 수행원으로 일본에 보내려 하자 승문원에서 "그가 자리를 비우면 사대문서 작성이 어렵나이다"라고 반대해 가지 못했을 정도다(그래서 일을 너무 잘 하면 안된다는 걸까?).

허균(1569-1618), 권필(1569-1612) 등과 친했던 그는 인조반정 이후 국문을 받는다.

과거장에서 남의 답안지를 작성해주는 일이 많았는데 특히 이이첨(1560-1623)의 아들들이 급제한 것이 그의 글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장을 맞다가 이승을 하직한다.

역적으로 죽은 그가 제대로 된 문집을 남기기는 힘든 일이다(허균의 <성소부부고> 같은 건 생전에 편집해 사위에게 전한 예외적 경우).

그런 만큼 그의 작품도 귀한데, 이런 과시집에 한두 편씩 끼어있는 사례가 가끔 보인다.

제목은 <당나라 산인 이필이 봉래원을 지으라는 왕명에 사례하는 글>.

저 먹칠된 두 줄이 무슨 내용일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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