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현장을 지키는 사람에게
연구자는 현장을 지켜야 한다는 저 신념은 기자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현장을 떠난 기자는 더는 기자가 아니다.
기자한테 현장은 뉴스가 있는 현장이 있고, 미래의 뉴스 생산을 위한 경험과 공부가 되는 현장이 있다. 나는 닥치지 않고 현장을 다니려 했다.
31년에 이르는 기자 생활 중 문화재 기자 생활을 국한해서 말하면 참말로 많은 문화재 현장을 닥치지 않고 다니려 했다.
발굴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문화재 현장도 되도록 현장을 다니려 했다.
한데 누구나 직면하는 문제가 기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렇게 다니나 보면 정작 회사가 요구하는 일을 못하거나 빠뜨리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현장을 다닌다는 것은 기회비용을 요구한다.
그래서 주로 주말이나 공휴일 그리고 휴가를 희생했다.
현장을 술자리로 혼동하는 놈들도 있다. 현장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현장 뒤의 술자리를 선호하는 놈 말이다. 기자 중에서도 이런 놈 있다. 꼭 현장이 끝난 다음에 나타나서는 술판에만 합류하는 놈이 있다. 이를 현장이라 선전하는 놈이 있다.
술자리에서 정보가 오간다는 신념 때문인지 모르지만, 솔까 경험칙상 그런 데서 나온다는 정보는 불륜 소식밖에 없다.
이 현장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시간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내고 보니 내가 현장을 많이 겪었는가? 놀랍게도 구멍이 숭숭 뚫려, 그 유명하다는 밀양 표충사와 영남루를 나는 이번 말년휴가에야 처음으로 보았다.
파리 로마 아테네는 나만 빼고 다 갔더라, 그래서 신경질 나서 해직 기간에 일부러 둘러봤으며, 에펠탑도 콜로세움도 아크로폴리스도 그때 첨 봤다.
얼마나 야마가 돌았으면 그 여행기 시리즈 제목을 [X발 나도 봤다 구라파]라 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닥치지 않고 섭렵하려 했고 닥치지 않고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양계초가 아들 양사성한테 보낸 편지에서 말한 대로 안 해 본 건 없지만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다는 딱 그 한탄이 바로 김태식이다.
한데 신동훈 교수도 경험했다는 현장에의 식상함이 나라도 예외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 싸돌아다니던 현장이 더는 구미가 댕기지 않았다.
발굴현장?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 그런갑다 하겠지만, 어느 시점 이후에는 발길도 하지 않았다. 의외로 해직기간에 몇 군데 다녔을 뿐이다.
그때 떠났어야 했다. 그 떠나는 객체가 문화재 기자가 되었건, 혹은 기자 자체가 되었건 그때가 떠나야 할 순간이었다.
그걸 붙잡고 있다가 이상한 일도 겪게 되었으니 다 운명 아니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배는 고프다.
I am still hu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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