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분명 결과론이다. 내가 애초 이 문화재업계 몸 담을 때만 해도 이쪽에 이리 오래 있을 줄 몰랐다.
있다 보니 이 분야는 첫째 뱀대가리지 결코 용대가리는 아니었으니 그만큼 폭도 좁았고 둘째 그러면서도 없어질 자리는 아니었으며 셋째 무엇보다 다들 진저리 치는 일이라 이 일을 하겠다 나서는 사내 경쟁자가 없었다.
이 점은 내가 이곳에 정착하는 호조건을 형성했는데 또 결과론이긴 하겠지만 내가 입성하고서 이내 이 업계를 평정하고 나니 설혹 이 일을 하고 싶은 동료들이 있다한들 내 아성을 넘을 수는 없으니 이 일은 이 분야를 나를 제외하면 무주공산으로 남겼다.
그렇다고 이 자리가 언터처블이었던가?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 성정이 누구한테나 고분고분한 사람도 아니고 정 아니면 대가리 쳐들고 받아버렸으며 무엇보다 무식하면서 말도 안되는 취재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지 행동은 아니꼽기 짝이 없으면서도 내 태도를 문제삼으며 짐짓 훈계질하는 선배놈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디리 받았다.
저들한테는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유일한 선택이 아니었으며 언제건 이 자리서 쫓아내도 지들로서는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자리였다.
그렇다고 나 역시 꼭 이 자리를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익숙해지니 이 자리가 편안한 것도 있었지만 이 자리를 고집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나를 축출하려는 방식과 때가 잘못됐을 뿐이니 나가도 내가 자발로 나가야 하며 것도 때가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그것을 나는 거부했던 것이며 그런 맞지 않는 부서장과의 불편한 동거는 내내 나로서도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부서장이니 관리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정 내가 불편한 친구는 나가고자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보냈다. 다만 내가 싫어 쫓아내는 방식은 내가 경멸했다. 눈가리고 아웅이라 하겠지만 내가 싫어도 나가기 싫다는 사람을 내가 내보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는 자리에 어쩌다 내리 17년을 있게 되었고 기간 나름대로는 전문성을 갖춘답시며 이리저리 닥치는대로 찾아보게도 되었으니
실은 저 17년이면 개돼지를 갖다놓아도 꼭 내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전문성을 다 갖추기 마련이다.
그렇다 나는 뱀대가리를 표방했지만 실은 같은 자리를 오래도록 굴러먹은 개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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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이 말하는 김태식] (1) 의심하라 끊임없이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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