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율곡으로 그는 경장론이라는 것을 내는데,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 판이니 활 줄을 새로 당기듯 새로 나라의 기강을 고쳐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체적 방안을 보면 모호하기 짝이 없다.
예를 들어 보면 학업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에게
처방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해결법을 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오는 애한테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게 무슨 처방이 되겠는가.
물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필자는 율곡이 구체적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 구체적 방안을 노출시키기에 앞서 지병으로 병사했다고 본다.
조선시대 중기에는 클리셰가 있다.
나라의 정치가 엉망이라고 사족이 개탄하여 상소를 올린다.
그 상소를 보면 선비의 이야기를 받아들여라 (납간)
부지런히 살아라 재물을 아껴라 등등
뻔한 이야기로 끝맺는다.
임금님은 상소가 좋다고 이야기 하고 벼슬이나 하사품을 내린다.
이런 류 이야기가 계속 끝도 없이 반복한다.
조선후기 실학도 마찬가지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썼지만, 소위 중농주의 실학자들의 개혁안이라는 것을 보면
완전히 공상에 어처구니없는 주장투성이라
토지를 공평하게 배분하잔다.
자기들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당시 사족들이 내는 개혁안이라는 게
구체적이지도 설득력도 없고 죄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을까.
이들은 바보였기 때문일까.
천만에-.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3년에 33명 나왔다.
생원진사과는 3년에 200명 나왔다.
소과 급제만 해도 머리가 죄다 돌아가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조선 중기 이후 나라가 개판이 된 이유를 몰라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조선시대 중기 나라가 개판이 되어 경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그 이유가 바로 향촌 사족들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역을 보자.
향촌 사족들은 군역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군포도 안 낸다.
그리고 사족들에게 소속된 노비 수백 명
몽땅 다 군역을 안 진다.
그러다 보니 군역은 노비도 아니고 양반도 아닌
그 중간의 평민들만 내게 되어 있는 것인데,
노비의 숫자는 노비종모법 일천즉천으로 묶여 있다 보니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로 줄지 않으니,
군역 담당하는 평민들만 허리가 휠 판인 것이다.
그러면 노비를 평민으로 올리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게 절대로 안된다는게 향촌 사족들 주장이라
왜냐하면 노비를 평민으로 올려버리면 당장 자기 농장 사역시킬 사람이 없는 것이다.
반드시 일천즉천으로 부모 중 한 명만 노비라도 노비를 만들어야
고민 썩히지 않고 자기 농장 사역할 노비 숫자가 유지되는데 왜 노비종부제를 하겠는가?
조선시대 시무개혁안이라고 올리는 상소의 태반이
전부 공허한 소리에 공상, 헛소리가 난무한 이유는 바로
그 원인이 사족들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양반들이 군역을 부담하고,
노비종부법에 따라 노비를 없애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숫자가 줄고 이들이 평민으로 편입되는 추세만 유지했더라도,
조선왕조는 군역 부담할 사람을 창출하기 위해 그렇게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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