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우리나라는
18세기 초반까지도 노비사역을 중심한 양반들의 대토지 경영이
나라의 생산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광작이니 자본가적 차지농이니 하는 건
조선시대 호적 한 번 안 들쳐본 이들의 잠꼬대 같은 이야기일 뿐이요,
화폐경제는 조선시대 일기만 하나 제대로 들쳐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은 다 알기 때문에 여기 적을 필요도 없다.
쉽게 말해 조선시대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이런 것은 논쟁거리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일기와 호적만 들쳐봐도 분명한 일을 어거지로 부정하려다 보니 나오는 이야기일 뿐
당시의 일차사료를 문맥 그대로만 읽어봐도 사실이 분명 명확하여 논쟁이고 나발이고도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대체 왜 노비를 중심한 대토지 경영이
당시의 주류로 자리잡지 않을 수 없었는가 하는 점이 되겠다.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를 노비종모제의 결과로 보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주객전도라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데,
노비종모제는 노비사역 대토지 경영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노비사역 대토지 경영이 반드시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이 땅에 사역할 노비를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방편으로 노비종모제, 일천즉천이 도입된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조선 왕조가 노비종모제는 밀어붙였다?
일천즉천 제도 때문에 노비가 늘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왕조는 절대로 노비를 늘리고자 하는 입장에 있지 않았다.
선의에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
조선 중기에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할 판이다,
경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 실체는 분명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입에서 오르내린 이유는
군역이고 세금이고 낼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당장 세금낼 사람이 없어지는 제도를 왕조가 왜 고수하겠는가?
그 이유는 전부 노비사역 대토지 경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생산조건 때문으로
이 방법 외에는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어 산출물을 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노비사역이 줄창 고수되었던 이유는,
예를 들어 지주-전호제로 갔다가는 지주가 전혀 산출물을 받지 못할 정도로 생산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생산력이 지주-전호제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공짜 노동이나 다름 없는 노비제를 온존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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