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비제에 관련하여 원래 태종은 노비종부법을 주장하였지만
세종, 세조, 성종을 거치면서 노비종모법, 일천즉천으로 노비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조선 내내 노비 숫자가 줄지 않고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게 되어버린 이유로
세종 세조 성종 등 당대의 임금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거니와,
과연 노비종모법 일천즉천을 이들 왕들이 무슨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겠는가.
따지고 보면 이런 노비종모법 일천즉천을 과부개가금지 등과 묶어서
조선전기의 유교 성리학적 세계관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로 보는 시각도 있던데
노비종모법 일천즉천은 성리학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고 유교하고도 아무 상관없는 제도다.
그리고 이 제도는 왕으로 대표되는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등의 이익이 안 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왕 아래에 오직 양인과 천민을 두고자 한 양천제의 기본 설계와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 노비종모, 일천즉천을 하면
날이 갈수록 양반 숫자는 늘지 않더라도 노비숫자는 늘고 자유민인 평민숫자도 같이 줄어들어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 걷을 곳이 없어지고 군역부과할 곳이 없어지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왕에게 이익이 된다고, 세종 세조 성종이 그 욕을 다 먹겠는가.
여기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나라 노비제를 온존시키고,
노비를 늘어날 수밖에 없게 노비종모, 일천즉천을 계속 유지하도록 집요하게 요구한 것은
왕이 아니라 조선의 사족들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향촌 사족들일 수록 이러한 경향을 더하여 이들은 수하에 수백 명씩 노비를 데리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유지하는 농장에서 농사 짓도록 사역하면서
노예화한 노비들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부려 먹었다고 할 것이다.
노비제의 온존, 노비종모를 세종, 세조, 성종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로,
노비제에 관한한 정부는 하등의 이익이 나올 수가 없으니,
노비제 유지에 대한 비난을 조선왕과 그 정부가 뒤집어 쓰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라 할 것이다.
노비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동력은 우리나라 향촌사회,
특히 향촌사회 동네마다 마을마다 노비를 수백명 거느리고 있던 그 동네 사족들에게서 나왔다.
이 점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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