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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나의 직업 : 학예사와 큐레이터의 사이

by 느린 산책자 2023.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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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부터 ‘큐레이션(Curation)’이라는 단어가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북 큐레이션’이나 ‘음악 큐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광고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책이든 음악이든 혹은 OTT에서든 ‘큐레이션’의 뜻은 같다. ‘콘텐츠를 분류하고 (가공하여) 제공하는 것’ 이것이 큐레이션의 의미이다. 핵심은 ‘분류하여 대중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에 있다. 

학예사와 큐레이터
학예사는 큐레이터(Curator)라고도 한다. 보통은 학예사와 큐레이터는 같다고 인식되지만, 개인적으로는 큐레이터보다는 학예사로 나를 소개하는 편이다. 미술관과 달리 박물관 업계에서는 학예사라는 단어를 많이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큐레이터라고 할 때는 ‘큐레이션’의 의미가 강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큐레이터의 어원은 저 멀리 간다고는 알고 있는데, 그냥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 어쨌거나 이때 ‘큐레이션’이란 전시를 위해 콘텐츠를 엮고 전시로 만들어내는 일을 뜻하니, 큐레이터란 전시 기획자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큐레이터가 아닌 학예사가 있을까? 굳이 엄밀하게 나누자면, 있다. 
학예사라는 단어는 큐레이터 이외에도 보존과학자를 지칭하는 컨서베이터(Conservator), 교육을 담당하는 에듀케이터(Educator), 연구 업무를 담당하는 리서처(Researcher), 유물 관리를 전담하는 레지스트라(Registrar)와 같이 학예 업무를 하는 직업인의 통칭이기 때문이다. 보존과학자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학예사들은 큐레이터, 에듀케이터, 리서처, 레지스트라 모두를 다 경험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박물관이라면 해당 과들이 있을 테니 부서 이동을 해야 할 것이고, 소규모 박물관이라면 올라운드로 업무를 다 처리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학예사
어느 날, 아는 학예사 분이 내 글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학예사는 지식을 가장 빨리 습득하는 사람들”이라고. 
오!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싶었다. 처음 보는 지식을 누구보다도 가장 빠르게 습득해서, 전시·교육·연구를 하고 유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학예사다. 

그런 면에서 가끔은 학예사에게 전공이란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박물관의 규모가 매우 크지 않는 이상, 학예사들은 내 전공이 아니어도 공부하여 박물관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해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공대로 일하는 것이 기관에게도 학예사 본인에게 가장 베스트인 상황이다. 전공자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비전공자는 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전공자라면 당연히 아는 것을 비전공자는 멀리 돌아 간다. 가령 예전에 나는 경성을 주제로 작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경성 내 학교의 변동 상황을 그래프로 보여주고 싶었다. 논문과 단행본들을 뒤지면서 표를 완성했는데 아뿔사! 하고나서 보니 ‘경성부세일반’라는 경성부에서 매년 발행했던 통계집이 있었던 것이었다. 한 시간이면 되는 일을 일주일에 걸쳐 했던, 이른바 ‘삽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성부세일반. 경성부에서 발행했던 것이다. 이것만 알았어도 금방할 수 있는 것을 정말 돌아돌아 할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시간이 주어지고 의욕이 있다면, 그래도 비전공자도 시간을 많이 들여 할 수는 있다. (물론 실수는 할 수는 있다...)그런데 만약 학예사가 어떤 직업인가라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가장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학예사는 ‘연결해 주는 사람’이라고. ‘물건(혹은 장소)에 깃든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엮어서 전달해주는 사람’이라고. 

빠르게 습득하는 것은 일종의 방법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학예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수히 많겠지만(어떤 직업이든 잘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면 좋은 것이겠죠!), 그 중 가장 필요한 것이자 나아가야할 방향은 ‘내재된 이야기를 잘 찾아내어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 혹은 공감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부족하지만, 나는 그 연결고리를 늘 찾고 있다.

 

*** Editor's Note ***

 

비슷한 문제 의식을 표출한 이 블로그 다른 필진 이서현 선생 글이 있다. 두 사람은 현재 뿌리 박은 자리가 지자체 박물관과 지자체 일선 문화재 행정 현장이라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아래 글도 아울러 음미했으면 싶다. 

 

학예연구사와 큐레이터

 

 

학예연구사와 큐레이터

‘학예연구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아마 ‘박물관’ 또는 ‘미술관’일 거다. 근데 지자체 학예연구사가 직업인 나는 박물관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내가 주로 하는 업무는 문화재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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