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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발굴은 곧 파괴다"는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 구호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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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건물지. 조사 완료 뒤 복토해 버렸다.



우리 문화재 현장의 주특기는 폐쇄다. 툭하면 폐쇄라 해서 문을 쾅쾅 닫아버리고, 심지어 영구폐쇄라는 이름으로 영원이 그 현장을 사람한테서 단절하고 격리한다. 

명분은 그럴 듯하다. 보존을 위해 그리 한단다. 그리하여 툭하면 보존 보존을 외치며 그것을 빌미로 툭하면 폐쇄다. 

그러면서 매양 하는 말이 "매장문화재는 땅속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발굴은 곧 파괴다"라고 한다. 

그런가? 

발굴은 곧 파괴인가?  

나는 이 따위 구닥다리 말이 아직도 문화재 현장에 불문률처럼 통용한다는 일이 비극이라고 본다. 아직도 이 말이 위대한 문화재현장의 권리장전, 마그나 카르타로 통용하는 일을 비극이라고 본다.  

땅 속에 있을 때 안전해? 그래서? 그러면 뭐가 보이니? 

발굴은 파괴?

내가 보는 발굴은 창조다. 창조를 위한 파괴다. 왜 그렇게들 자신이 없는가? 

툭하면 훼손되니, 혹은 그럴 우려가 있다는 소위 학계의 뜬금없는 연구용역과 언론의 지적질에 결국은 무령왕릉은 영구 폐쇄되었고 능산리 동하총도 영구 폐쇄되었다. 

이런 일 볼 적마다 내가 어이가 없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벽돌로 쌓은 무령왕릉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던가? 뭐가 더 훼손된다던가? 

이끼 낀다고? 끼면 가끔 벗겨내면 그만일뿐. 그래서 영구 폐쇄하니 좋은가? 


중국 서안 건릉 영태공주묘



내가 그간 계속 한 말 다시 반복하거니와, 말하거니와 발굴은 창조다. 아니 창조여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파괴인가?

첫째, 조사를 명목으로 유물을 다 걷어내는 일이 파괴다. 

둘째, 그런 흔적을 묻어버리는 일이 파괴다.

그리하여 풍납토성은 그 많은 땅을 파제꼈는데도 현장엔 정작 백제가 없는 꼴이 빚어진다. 이 역설을 이제는 깨야 한다. 

이를 위해 

1. 현장의 고고학도가 깨어야 한다. 

2. 문화재청이 깨어야 한다. 

3. 문화재위가 혁파되어야 한다. 

4.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 

5. 지역사회를 세뇌해야 한다. 


발굴이 곧 파괴라는 말이 주는 원천의 경고, 혹은 교훈까지 내가 깡그리 무시하고 싶지는 않고, 그 효용성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만, 이젠 저 텍스트도 시대 흐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발굴이 곧 파괴라고 부르짖을 수는 없다. 

발굴이 곧 파괴다....이젠 이 말이 더는 그럴 듯하게, 혹은 똥폼 나게 들리지도 않는다.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 말을 특히 더 경멸하는 까닭은 많이 파제낀 사람일수록, 많이 파고 있는 사람일수록 저 말을 입에다 달고 살기 때문이다. 천지사방 발굴을 못해 환장했으면서도, 말을 저리 하니, 뭐 있어 보이기는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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