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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사 터에 남은 이 비석은 주인공 행적을 적은 비신碑身을 중심으로 그 받침에 해당하는 거북 모양 비좌와 용을 새김한 이수에 이르기까지 사람으로 치면 몸통과 발, 얼굴 삼박자를 온전히 갖춘 것이라
전제 높이는 4.55m라지만, 이를 받침과 이수가 없는 광개토왕비에 견줄 때는 당연히 비신만을 적출해야 하니, 비신은 높이 263㎝, 너비 155㎝, 두께 43㎝라.
이 비면에다가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 무염無染 행적을 물경 5천120글자에 달하는 장편 서사시로 써내려갔다.
광개토왕 고담덕 추념비와 비교하면 3분지 1 크기밖에 되지 않는데, 높이 6.3m에 달한다는 저짝에는 고작 1775자를 써내려갔지만, 장대한 책 한 권을 너끈히 적었다.
이 둘만 비교해도 저 고구려 웅혼 운운한 광개토왕비가 얼마나 무식한 소치인지 단박에 드러나거니와, 더 웃긴 것은 그 무식함을 시간이 흘러 천육백년 뒤에는 그에서 웅혼을 불러내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하긴 뭐 같은 사람이라도 시와 때에 따라 그 자체가 달라지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지니 뭐 요상한 것은 없으니 피장파장 똥끼나 밑끼나 아니겠는가 싶다.
그리 보고 싶으면 그리 보면 그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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