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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내가 기억에서 지워버린 인연의 흔적

by taeshik.kim 2018.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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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선 글, 그러니깐 20년전 내가 만난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는 내가 그 내력을 똑똑히 기억하는 20년 전 내 기사지만, 그 반대편엔 전연 그렇지 아니한 기사가 많아,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비슷한 시기 내 기사 역시 그런 축에 든다. 기자들한테 행정기관이 배포한 무미건조한 보도자료가 주로 그런 축에 많이 들 수밖에 없으니, 본인이 본인 노력을 들여 취재하고 가공해서 만든 기사에 아무래도 정이 가기 마련이고, 그런 기사가 오래도록 그 기자 뇌리에 남을 수밖에 없다. 

문화재청이 오랜 노력 끝에 산하에 문화재 전문 인력 양성을 표방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라는 4년제 대학 설립 허가를 득하고, 그 문을 열어 1999년 말 첫번째 신입생을 모집하니, 이들이 2000학년도 제1회 입학생이 된다. 전통학교라 하니, 무슨 고등학교 같다 해서 나중에는 마침내 이 역시 오랜 투쟁 끝에 한국전통문화대학교로 이름을 바꾼 이 대학은 출범 당시에는 전통조경학과와 문화재관리학과 두 개 학과만 개설했으며, 입학 정원은 각각 20명이었다. 

당시 신입생 모집 결과를 문화재청은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니, 이를 토대로 나는 아래와 같은 영혼이 없는 기사를 작성해 내보냈다.  

전통문화학교 합격자 발표

입력 1999.11.03. 14:11 수정 1999.11.03. 14:11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문화재 관련 특수대학교육기관으로 내년 3월 충남 부여에서 개교하는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학교(학교장 김병모) 2000학년도 입학시험 합격자가 3일 발표됐다.

전통조경학과(정원 20명)와 문화재관리학과(정원 20명) 등 2개 학과만 우선 문을 여는 2000학년도 합격자 40명 중 전체수석은 문화재관리학과를 지원한 서울 덕성여고 박영록(18)양이 차지했다.

수능시험 성적에 상관없이 1천1백여명이 지원해 28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이번 입시의 가장 큰 특징은 전국적으로 고른 지원과 연세대와 고려대 합격 수준의 상위권 학생이 대거 지원한 것을 들 수 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합격자 시도별 분포는 서울(27.5%) 거주자가 가장 많아 충청 출신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을 깼으며 충남(20%), 전북(15%),경기(10%)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이들 합격자들이 다른 대학에도 지원할 수 있음에 따라 과연 이들 1차 합격자 중 몇명이 전통문화학교를 택할지 주목되고 있다.

taeshik@yonhapnews.co.kr

내가 이 기사를, 더구나 19년이 지난 그 내용까지 기억할 리가 있겠는가?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나는 문화재 업계 인사들이랑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연결된 사람이 많다. 개중에서도 박물관이나 문화재청 사람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생각보다는 내가 이 업계에서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조폭과도 같은 지위를 점하는 까닭에 나는 잘 모르나, 나를 아는 문화재 업계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직접 대면할 일은 거의 없고, 그런 까닭에 내가 그에 대해 자세히 알 턱이 없는 그런 문화재 업계 사람 중에 올들어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눈에 들어왔다. 두어 번 스치듯 인사 정도한 문화재청 직원 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느닷없이 그리스로 가서는 어학 연수하네, 교육받고 있네 하면서 하는 친구였다. 보니, 아마도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그리스를 골라서 연수를 간 모양인데, 잔머리 잘 굴렸다는 인상은 받았다. 영어권은 경쟁자로 미어터질 텐데, 그리스는 누가 가고자 하겠는가? 와! 잔머리 대마왕이다. 하는 그런 인상 말이다. 

한데 이 친구 포스팅을 보니, 조금은 요란스런 구석이 있었다. 연수를 빙자해 인근 유럽 다른 지역을 요란스럽게 싸돌아 댕기며 이런 저런 글과 더불어 사진을 올리는데, 보니, 영 사진이 꽝이었다. 뭐 사진 기본 구도도 안 맞을 뿐더러, 그나마 그런 축에 드는 사진도 절대다수가 아래로 위로만 찍어대니 굴곡이 심해 이만저만 못볼 꼴이 아니었다. 명색이 문화재를 업으로 삼는다는 친구가 우째 문화재 사진을 이리도 못 찍는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니 사진 그 따우로 찍을래?" 그러면서 사진 찍은 아주 기본 사항 몇 가지만 알려줬다. 이런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는지 어땠는지는 모르나, 그 직후 가르침을 실천했다면서 올리는 사진을 보니 훨씬 볼 만은 했으니, 그런대로 쿠사리 찐밥을 준 일이 썩 헛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그가 이랬다. "부장님은 기억 못하실지 몰라도(당연히 못하지),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라면서 느닷없이 고랫적 시절 내 기사를 링크해 보내는 것이었다. 보니 저 기사였다. 저 기사 중간에 "2000학년도 합격자 40명 중 전체수석은 문화재관리학과를 지원한 서울 덕성여고 박영록(18)양이 차지했다"는 구절이 있거니와, "저 기사에서 기자님이 말한 박영록이가 접니다" 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전통학교 1회 입학생 중에 유일하게 졸업과 동시에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로 입사해 지금은 학예연구관으로 진급한 한나래 군이 있으니, "그렇담 너가 나래 동기냐?" 했더니 그렇단다. 뭐 그렇다고 내가 20년 전 기사에서 저를 언급했다 해서 나한테 특별히 고마운 게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에게 20년전 18살 새파랄 때, 그를 기사로써 언급한 기자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억에서 까마득히 지웠으나, 그렇게 지워 버린 과거의 내 기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새삼스럽다 할 것이다. 뭐 그래서 기자는 기사를 잘 쓰야 한다는 진부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일도 있다는 일화 소개 정도로 보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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