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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부끄러움을 많이 탄 민속박물관 과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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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인데도 기자가 보는 사람과 그 조직에서 보는 사람이 달라 곤혹스러울 때가 무척이나 많다. 비단 기자뿐이겠는가? 기자를 대하는 그쪽에서는 늘 기자를 기자로 대하기 마련이며, 그래서 무척이나 말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하며, 반드시 해야 말도 한껏 정제해서 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소위 취재원으로 만나는 사람한테 기자가 안 좋은 인상을 지니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기자인 줄 알고 나를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나한테는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오늘 우리 곁을 떠난 박호원 선생도 나한테 그리 박힌 인상인지 못내 저어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그가 생평 직장처럼 삼아 보낸 국립민속박물관 사람들한테도 수소문한 결과와 내가 생전에 그이한테 받은 인상은 무척이나 합치하는 면이 많아 적이 안심이 된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시종 내성적이었다. 말수가 거의 없는 편이었고, 내가 민속박물관 담당 기자인 까닭에 부러 그러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수줍음을 유난히 많이 탄다는 인상을 시종일관 주었다. 숫기 없는 남자? 뭐 그런 느낌이 많은 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잘 웃었다. 수줍음을 장착한 채 그 큰 눈망울을 뜨고 웃는 모습은 뭐랄까? 걸핏하면 거짓말을 일삼고는 눈치를 보는 어린아해들 같았다. 내가 아는 그는 이렇게 시종일관 선했다. 그런 까닭에 취재원으로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재미는 없었으니깐 말이다. 

정확한 시점을 당장 확인이 곤란하나, 1988년 학예연구사로 몸을 담기 시작한 국립민속박물관을 그는 2011년 어느 무렵 훌쩍 떠났다. 그 떠나는 과정을 나도 어느 정도 들어 알거니와, 지금은 공개하기 힘든 저간의 사정이 있어 혹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말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렇게 떠난 민속박물관을 뒤로하고 그는 민속 전문 출판사로 명망 있는 민속원에 둥지를 튼 것으로 안다. 

당시 민속원은 선대 회장 업적을 계승한 홍종화 사장 시대가 막 개막한 상태였으니, 이런 민속원과 의기투합해 이 출판사로 부정기로 출근하면서 민속학 관련 출판을 기획했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편집주간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이기 시작한 '아르케북스 시리즈'다. 오늘 현재 총서 105종을 헤아리는 아르케북스는 민속학은 물론 역사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총서로 그 참신성과 디자인 등에서 학계의 호평을 산다. 이 시리즈는 박호원 선생이 없었으면 있을 수 없는 기획이다. 이 시리즈를 볼 때면 언제나 그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퇴직 이후 나는 아마 한 번도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고 기억한다. 혹 모르겠다. 이런저런 자리에 한 두번 스쳤을지는. 그렇게 민박을 훌쩍 떠난 그가 7년 만에 들고온 소식이 타계였다. 그것도 본인이 타계했다는 청천벽력이었다. 

정치인 노회찬이 실로 어처구니 없는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데 이어 소설가 최인훈 선생까지 타계한 소식이 전해진 어제, 민속학계 지인이 "박호원 선생도 쓰러져서 뇌사 상태"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쓰러진 선생이 이틀만인 오늘 낮에 갔다. 영원히 갔다. 아르케북스 총서를 남기고는 표표히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듣자니 그는 지난 22일 오후 4시 조금 넘어 집안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그날이 집안 제삿날이었는데, 제사 준비를 하는 와중에 집안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그만 쓰러져 불과 20분만에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이미 뇌사 판정을 받고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한다. 선생은 생전에 이미 장기기증을 약속했다고 한다. 부질없는 연명치료는 거부한 셈이다. 이런 고인 의견을 반영해 산소 마스크를 떼어냈다고 한다. 그가 산화함으로써 남긴 장기들은 아마도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일 것이다. 수줍음 많은 그야말로 의인이지 않을까? 

그는 일찍이 형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었다. 형이 30대였을 때라고 한다. 형이 죽자 그 형수와 조카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는 민속박물관 사내 커플이다. 이종철 관장 시절 그 비서와 연애를 해서 가정을 꾸렸다. 먼저 박물관을 떠난 부인은 나중에 남편이 박물관을 명예퇴직한다 하자, 군말없이 그 뜻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의 간단한 생애를 다음 부고 기사로 정리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을신앙 연구한 민속학자 박호원 박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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