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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노회찬·최인훈이 떠난 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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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인훈>

오늘 우리 공장 업무와 관련한 긴요한 점심이 있었다.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시행하는 수림문학상 공모전 올해 제6회 예심을 앞두고 그 심사위원들을 모시는 점심 자리가 수송동 우리 공장 인근에서 예정되었다. 시침이 12시를 가리키기 직전, 나는 우리 공장 문화부장 자격으로 문학담당 임미나 기자와 더불어 약속 장소로 갔다. 그 자리에는 문학상 심사위원장 윤후명 선생과 심사위 일원들인 평론가 신수정 교수와 소설가 강영숙 선생, 그리고 수림재단에서 김정본 사무국장과 윤정혜 과장 등이 이미 와 있었다. 앉자마자 자연 화제는 그 직전 터진 노회찬 의원 투신자살사건이었다. 

이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도중에 신수정 선생인지 강영숙 선생인지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그러게 말입니다. 최인훈 선생도 돌아가시고.."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도, 임미나 기자도 "엥?" 하면서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던 바, 신 선생이 말하기를 "조금 전에 최 선생님 돌아가셨다는 문자 받았어요"라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임 기자와 나는 곧바로 자리를 뛰쳐나왔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도로 회사로 튀었다. 점심 장소가 회사 코앞이었기에망정이지, 조금만 멀었더라도 여러 곤란을 겪을 만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임 기자가 작성한 〈'광장' 최인훈 작가 별세…향년 82세(1보)〉라는 타이틀에 "소설 '광장'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최인훈(82)이 23일 오전 10시46분 별세했다. 향년 82세."라는 본문 1줄짜리가 달린 긴급기사를 송고하니 이때가 낮 12시6분53초였다. 이어 2보가 나가고, 다시 타계 소식을 총정리한 스트레이트 종합판을 마무리하고는 고인의 문학사적 의미를 정리한 해설박스기사 〈최인훈 타계…한국문학 '광장' 연 거목 쓰러지다〉를 12시40분42초에 송고하니, 이로써 최인훈 선생 타계와 관련해 반드시 쓰야 하는 기사는 일단 마무리를 봤다.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사로써 그것을 정리하기까지 불과 40분을 소요한 셈이다. 그러곤 다시 점심 자리로 갔다. 

초단시간에 이를 마무리한 힘은 그의 타계에 대비해 미리 써둔 기사였다. 최인훈 선생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한 달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은 이미 대략 한달 전쯤에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나, 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다만 그 시점을 단안할 수 없었을 뿐이다. 

최인훈은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워낙 막강한 까닭에, 더구나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마당에, 비단 우리 공장만이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서도 그의 죽음에 대비한 여러 가지 기사를 미리 구축해 놓았을 것으로 본다. 그의 투병소식을 접하자, 나 역시 임 기자한테 미리 관련 기사 써놓아 달라 주문했던 것이며, 임 기자도 내 그런 부탁이 아니었다 해도 그리했을 것이다. 미리 쓰는 부고 기사에는 사망 시점과 빈소, 그리고 발인 시점과 장지가 비기 마련이거니와, 막상 일이 닥칠 적에는 저 부문만 보강하면 생각보다는 일이 수월하다. 

오늘 아침 일이다. 퍼뜩 최인훈 선생 생각이 나서, 임 기자한테 물었다. "기사 다 준비해 놨냐?" 그랬더니 임미나가 그랬다. "벌써 다 써서 올려놨자나요?" 우리 공장 문화부 게시판이 있는데, 그곳에다가 그의 타계에 대비한 각종 기사를 올려놨던 것인데, 내가 미쳐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노회찬 사건이 전해졌으니, 그 소식이 긴급 기사로 타전될 무렵, 나는 심히 졸려 한참 비몽사몽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편집국에 일시에 "아~" 하는 장탄식이 흐르는 느낌에 정신을 들어보니, 노 의원이 투신자살했다는 비보였더라.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묘하기만 하다. 때묻은 정치판에서도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로 각광받은 한 정치인이 느닷없이 가고, 곧이어 이미 죽음이 예고된 것이었다고는 해도, 좌도 우도 아닌 중립을 택해야 하는 삶을 실로 절묘하게 포착한 이 시대 문단의 거물이 이내 그 길을 따랐으니, 오늘 대한민국은 초상집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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