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장수한 영조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어제시문을 남겼다. 중요한 책의 서문은 거의 다 썼고, 백성에게 포고한 윤음도 거의 모두 직접 지었다.
보통 윤음은 지제교에게 짓게 한다. 정조 《홍재전서》에 친제문으로 실린 글을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보면 지제교 아무개가 지었다고 되어 있어 거의가 대작이다.
시문을 보면서 일부만 떼어서 각각 책 한권으로 구성할 것들이 적지 않다.
치료차 온양온천을 오가며 남긴 시문은 그대로 하나의 여행기가 되고, 생모 숙빈 최씨를 모신 소령원 제실에서 책을 읽고 직접 농사도 지으면서 남긴 수많은 시문들은 단지 생모에 대한 애뜻함에 그치지 않는다.
영조는 죽을 때까지 책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읽고 쓰고 사유했다.
사실상 지식 수준도 집권 시기 내로라하는 경연관을 능가해서 경연 때마다 신하들이 당혹감에 시달렸다.
반응형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가와 인과관계]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0) | 2022.11.03 |
---|---|
1927년 간행된 《열성어진(列聖御眞)》에 실린 임금님들이라는데.. (1) | 2022.08.01 |
《퇴고필지推稿必知》, 한문고전의 번역 지침서 (0) | 2022.07.24 |
부안 소요암을 찾아서 in 1743 by 황윤석 (1) | 2022.07.23 |
맹금, 그 종류와 이름〔鷙鳥名〕 (1) | 2022.07.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