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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역사가와 인과관계]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by taeshik.kim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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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의 음주량 이상을 마시고 파티에서 돌아오고 있던 존스는 거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길모퉁이에서, 나중에 브레이크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차로 로빈슨을 치어 죽였는데, 로빈슨은 마침 그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에서 담배를 사기 위해 길을 건너던 중이었다. 혼란이 수습된 후 우리는, 예컨대 지방 경찰서 같은 곳에 모여서 그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게 된다. 그것은 운전자가 반쯤 취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형사 소추가 가능할 것이다. 아니면 결함이 있는 브레이크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겨우 1주일 전에 그 차를 정밀 검사한 수리점에 대해 무엇인가 조치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컴컴한 길모퉁이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도로를 관리하는 당국이 문제점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소환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실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의 유명 인사―나는 그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겠다―가 방으로 불쑥 들어와서는 우리에게, 만일 그날 밤 담뱃갑에 담배만 있었던들 로빈슨은 그 길을 건너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로빈슨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이 원인을 무시하는 모든 조사는 시간 낭비가 될 것이며, 그런 조사에서 이끌어 낸 어떠한 결론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대단히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기 시작한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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