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노비가 양반 되기

by 신동훈 識 2025. 7. 20.
반응형

사실 반 상상 반으로 조선시대 노비가 양반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선 노비가 외거하면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더라도 자기 재산 축적이 가능하며

심지어는 땅도 자기 땅을 사고 파는 것은 물론, 

노비의 노비도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18-19세기가 되면서 양반층 중에 경제적으로 사실상 신분을 유지 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양반 중 장자 상속 등으로 여전히 많은 토지를 집적하고 있는 상위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양반층과 평민, 심지어는 노비들 중에도 경제적으로 이들을 앞서기 시작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노비가 자기 성을 갖고 나중에 양반이 되더라도 
모두 다 도망가서 딴 동네에서 성공했으리라 보면 착각이다. 

대부분은 자기 조상 대대로 노비로 살던 동네에서 이들은 성공해서 신분을 상승시키고 양반까지 올라서는 것이다. 

그러니 18세기 초반까지도 호적에 성도 없고 부, 조부, 증조부 3대의 이름도 제대로 적지 못했을 사람들이 

느닷없이 유학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처음 그렇게 모칭하더라도 

동네에서 이들을 쉽게 보지 못할 경제적 힘이 먼저 필요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남아 있는 호적을 보면 
18세기 전반에서 후반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가장 변화가 심한 것 같은데 

이전까지 성과 번듯한 이름, 본관을 갖고 자기쪽 3대 조와 처가쪽 3대 조를 호적에 적은 극소수의 양반 외에 

대다수가 노비로 성도 없고 이름만 간신히 적었던 사람들이 바글 바글했던 호적이

18세기 후반이 되면 노비의 수가 격감하고 그 안에는 자기 성을 가진 많으 사람들의 새 가구(신호)가 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18세기 후반, 같은 마을 안에서 동네 사람들 모두 저 집안은 노비라고 알던 사람들이 

호구의 식년 조사에서 어느날 갑자기 자기 성과 이름을 쓰고 3대조부 이름까지 적어내고

직역에는 유학이라고 적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다.

자신의 조상이 노비라는 것을 다 아는 동네에서 성과 이름, 직역까지 뒤바꾸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필자는 경제력의 힘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