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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시조로부터 갈려 나온 모든 후손을 몽땅 다 적어 놓은것을 대동보라 하는데
사실 파의 시조로 부터 나온 모든 후손을 적는 파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집집마다 꽂힌 족보들은 그 안에 근대성을 담고 있다.
지금 족보들은 적사차별도 없다.
모든 후손을 골고루 다 적는다.
족보를 봐서는 자기 집 족보가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해도
도대체 적자인지 서얼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현대 족보의 근대성의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호적만 봐도 적서의 구분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물론 19세기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호적에는 군역상의 임무, 즉 직역을 적게 되어 있는데
적자와 서자로 직역이 달랐다.
예를 들어 유학은 서자는 18세기 초반까지도 쉽게 못 적었다.
족보에 업무, 업유 등으로 적어 놓은 경우 높은 확률로 서자 집안이다.
이런 구분은 현대 족보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 조선시대의 호적이 몇몇 지역 빼고는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얻을 길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족보를 전통시대의 상징처럼 보고 있지만,
사실 그게 아니라 지금 족보의 포맷은 매우 매우 근대적이다.
신분 해방이 진행된 후의 형태라는 것이다.
조선시대가 노비가 사라지기 이전에는 이런 형태의 족보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현대 족보는 전근대적인 관습의 유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근대적 산물이다.
필자 생각에는
지금 족보의 상당수는 일제시대까지 내려와 완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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