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필자가 오랫동안 지닌 의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도대체 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가.
나라가 다르니 역사도 다르다라고 간단히 이야기하고 치워 버린다면
이 세상에 고민할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노벨상을 타는 네안데르탈인 유전형질을 백 번을 더 규명하면 뭐하겠는가
원래 그렇게 되어 있다는데.
그런 생각이면 학문도 필요 없고 연구도 필요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과 일본은 달라져야 당연한 나라가 아니다.
역사서는 이 두 나라가 오래전 매우 비슷한 시스템 위에 놓여 있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보이는 한전과 왜인전은 사실 거의 비슷한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한국의 정치 사회적 작동원리를 그대로 이식한 고분기, 아스카 시대, 나라시대까지 이어졌고,
중국식 왕조를 표방한 헤이안시대까지도 아마도 두 나라는 거의 비슷햇을 것이라 본다.
아마도 이 두 나라가 서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무가 정권이 성립한 이후부터였을 것이라 보는데
그것도 갑자기 급격히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에 무가정권이 성립하던 시대에 한국에는 무신정권이 성립되었고
그 주변상황을 보면, 무가정권 성립 이전의 일본 지방의 상황과
한국 후삼국의 상황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이 본격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트랙을 달리기 시작한 것은 그 후부터다.
이때까지 양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도,
무너지는 공전제와 토지의 사적 소유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문제였다고 본다.
공전제는 곧 독립 농민의 존재를 배경으로 하지만, 토지의 사적 소유가 진행되면서 독립 농민은 점점 줄어들고
이들은 토지를 지배한 이들에게 보다 강하게 예속되었던 것 같다.
일본의 장원 농민과 한국사의 노비는 따라서 거의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이었다고 본다.
토지의 사적 소유가 점점 진행될 수록 국가가 자원으로 파악할 수 있는 농민 가구는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장원철폐령이 계속 내려오고,
한국은 전시과, 과전법, 그리고 전민변정도감이 계속 줄지어 설치된다.
이러한 과정의 변화가 최종적으로 가 닿은 시대가 바로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그리고 일본은 전국시대가 되겠다.
이 시점이 되면 조선와 일본은 완전히 다른 시스템의 국가가 된다.
이 두 개 시스템이 어느 것이 성공적이었는가 하는데 대한 최종적인 성적표는
1910년 받아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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