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정상 부근에서 발견된 이 불행한 사망자를 끌어내리기 위한 작업은 곧 시작되었다. 도대체 언제 사망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행정 절차상 이 작업 책임자는 당연히 법의관이 맡게 되었다. 몇 명이 함께 올라가 외치 주변 얼음을 녹여가며 조심조심 그를 빙하에서 들어냈으며 외치 주변에 혹시 이 사람의 유류품으로 볼 만한 것이 없는지 샅샅이 찾았다.
이때 그 주변에서 찾아낸 유물 위치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이를 보면 알겠지만 발견한 유물들이 요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들 뿐이었다. 왠 구리도끼가 나왔고 화살대로 보이는것을 주웠다. 어쩌면 이 케이스는 법의학 케이스가 아니라 고고학 케이스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외치를 조사하는 인스부르크 대학 연구자들 (1998년). 이때만 해도 외치는 지금의 대접을 못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헬리콥터로 운반하여 산꼭대기에서 끌어내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옮겨졌다. 인스부르크는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도시이지만, 사실 20세기 전만 해도 이곳은 오스트리아 남부, 이탈리아 북부를 아우르는 전체 “티롤”지역의 수도와 같은 도시였다. 티롤은 원래 남독일계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독일인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는데 1차대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티롤 남부지역은 당시 승전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에게 넘어가 버렸다. 말하자면 독일의 알사스-로렌과 같은 상황의 지역이었다 할 것이다.
티롤 지역. 현재는 인스부르크가 있는 북쪽 지역과 볼차노가 속한 남쪽 지역이 각각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 나뉘어 있지만 원래는 공통의 문화를 간직한 지역이다.
남티롤이 이탈리아에 넘어가버리면서 티롤은 오스트리아에 속한 북티롤과 이탈리아에 속한 남티롤의 두 지역으로 “분단”되게 되었다. 외치가 발견되었을 당시까지만 해도 이 케이스는 5,000년이나 된 미라가 아니라 법의학 케이스로 다루어졌으므로 티롤 수도격인 인스부르크로 시신이 운반되어도 남티롤에서는 항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고마와 했을지도..)
콘라드 스핀들러가 쓴 외치 연구사. 외치가 어떻게 발견되고 연구되었는가 하는 초기 연구사가 담담한 필치로 씌어져 있다. 국내에 번역되었는지는 모르겠고 아마존에서 영문판은 지금도 쉽게 구할수 있다.
주라기 공원의 한 장면.
현재 외치가 발견된 곳에 남아 있는 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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