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각설하고.
외치는 지금이야 볼차노에 머물고 있지만 이 양반은 원래 이 도시에서 발견된것은 당연히 아니고.
볼차노에서 가까운 알프스 산 꼭대기에서 발견되었다.
이 그림을 보면 외치가 도대체 얼마나 높은 곳에서 발견되었는지 알 수 있다. 사진아래에 설원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외치가 발견된 곳이다.
때는 1991년 9월.
독일 등산객 부부 두 양반이 그날도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그날따라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평소에 안가던 길을 거쳐 내려가기로 맘을 먹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거의 평상시 다니지 않는 그늘지대를 거쳐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반쯤 녹아 있는 빙하에 엎어져 죽어 있는 시신을 발견하였다.
외치를 발견한 Simon 부부
발견당시의 외치. 엎어진 모습으로 반쯤 녹은 빙하에 빠진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그해는 여느 해보다 기온이 높아 이 지역이 녹아있던 것으로 평상시라면 빙하에 덮여 외치가 밖으로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등산객 부부는 이 사람이 등반중 사망한 등반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알다시피 히말라야나 알프스 등에는 등반중 사망한 산악인이 빙하에 뭍여 흘러내리는 통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불행한 산악인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독일 영감님 부부는 하산하면서 들린 산장 관리인에게 자신들이 발견한 시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산장에 들렸을때 여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악인이 머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라인홀트 메스너 Reinhold Messner.
라인홀트 메스너
사실 전문 등산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 산악인의 이름을 안다.
내 또래 사람들은 아마 1977년 고상돈씨가 에베레스트에 올라 전국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 한국등반대가 성취한 업적은 물론 당시로서도 대단한 것이었다. 이때 한국등반대가 에베레스트를 올랐을 때 사용한 기법을 극지법이라 하는데 등반가가 무더기로 몰려가 목표가 되는 산에 여러 개 중간 캠프를 만들어 개미떼처럼 이곳에 차곡차곡 식량과 장비를 수송해 올리고 마지막 정상 등반대가 최종 캠프에서 이를 이용하여 정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한두 명 정상 정복자를 만들기 위해 수십명 등반가가 아래에서 떠받쳐 주는 모양인데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힐라리 이래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모든 원정대는 그때까지 바로 이 방법을 이용하였다. 1977년 한국 등반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1977년.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한 고상돈. 한국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이었지만 이 등반은 세계사적으로 보면 전통적 극지법 등반의 마지막 불꽃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1978년부터 라인홀트 메스너에 의해 히말라야에는 무산소 단독등정이 이루어지면서 극지법은 구닥다리 등정기법이 되었다
1978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무산소로 오른 라인홀트 메스너. 고상돈의 정상등정 사진에서 보이는 국기 지지대 (중국대가 세워놓고 간 것이다)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고상돈의 사진에서 보이는 산소 마스크가 메스너에서는 사라졌다. 엄청난 수준차라 할 수 있다.
빙하에 갇힌 외치를 살펴보는 메스너. 이 세계적인 등반가가 외치를 처음 목격한 사람 중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구설에 오르게 된다.
독일인 부부로부터 시체가 빙하가 노출된 지역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메스너는 아마도 같은 산악인으로서의 동지애 때문이겠지만 그들이 이야기 한 지역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외치를 발견 당시 현장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메스너 후일담을 보면 그는 외치를 처음 보았을 때 뭔가 이 사람은 요즘 죽은 사람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산을 등반하다 조난당해 사망한 등반가 같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뭔가 훨씬 옛날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한 모양인데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사람이 5,000년이나 전에 죽은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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