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송은의 온양민속박물관 이야기

눈빛이 살아 있네~~ 전양군 이익필!

 

 

매서운 눈빛, 날카로워 보이는 눈꼬리, 커다란 귀.

누구실까?

 

눈 주위로 보이는 눈주름과 거뭇한 검버섯이 이분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지만, 아직도 눈빛에서 당찬 기운과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느껴진다. "내 비록 외모는 세월에 주름 지었지만 내 기상 만큼은 세월에 굴복하지 않겠다." 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듯하다. 

 

이 눈빛의 주인공은 전양군 이익필( 馝, 1674~1751)이다.


본관은 전의(), 자는 문원(), 호는 하옹(翁)이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703년(숙종 29)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도순무사 오명항()과 함께 금위우별장에 제수되었고, 특히  안성 죽산전투에서는 금위좌별장 이수량()과 함께 난을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분무공신() 3등에 녹훈되고, 전양군()에 봉해졌다.

 

 

전양군 이익필 초상  馝 肖像  18세기 전반  명주   29.6×38.0(cm)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1977년 이익필 후손 분이 온양민속박물관에 이익필 관련 유물 31건을 일괄 기증했다.

초상화 말고도 이익필이 사용했다는 주립(朱笠), 갓집, 발막신, 관련 교지 27건으로 구성된다. 


보시다시피 초상화는 상태도 비교적 온전한 편이다. 또한 밑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익필이 사용했다는 주립과 발막신 또한 매우 온전하다. 


교지에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전답과 노비를 특사받았다는 내용과 1751년(영조 27)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는 내용까지 확인한다.

 

이러한 문화재 가치에 주목해 박물관에서는 2008년, 2018년 두 차례 '이익필 유물 일괄'을 도지정문화재로 신청했으나 실패했다. 

 

2008년 지정신청서에 쓰인 글을 빌리자면, 이 초상화는 조현명(趙顯命, 1690~1752)1751년에 생존 분무공신 14명의 훈부화상첩(勳府畵像帖)을 만들 때 이모移模했다는 원본일 것이라는 것이다. 


歸鹿集 18 勳府畵像帖記」에 이르기를, 


十年之面數幅之圖 鬒如者皤如乎 渥如者皺如乎 形貌有時而改 其有不改者存乎 胸中一段雄心 依舊玄甲將軍 豊原君 趙顯命 撰歸鹿集 18 勳府畵像帖記


라 했다. 


재밌는 점은 이때 그린 영성군 박문수 영정 2점과 언성군 김중만의 영정 3점은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의 세부적인 심사평까지는 알 수 없지만 듣기로는 '이익필'과 '충청남도'와의 지역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이익필은 대구 출생이고, 묘는 현재 경북 김천시에 있다.(묘지의 위치는 디지털 달성문화대전에서 확인하였으나, 묘지는 실제로 가보지 못했다.


물론 '지역성의 부족' 만으로 지정 받는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겠지만, 답답하다.


다시 지정문화재 신청을 한다면 모 학예사 말처럼 이익필은 '전의 이씨'가 아니냐고 어필해 보려 한다. 


이번엔 지정받아야지! 

 

 

 

온양민속박물관 전시 전경                                                         전양군 이익필 주립(화면에서 오른쪽)

 

박물관 제 1전시실에는 전양군 이익필이 쓰던 주립이 전시되어 있다.

주립(朱笠)은 주로 무관이 착용하는 모자로, 흑립과 같은 형태에 붉은 옻칠을 하고, 양 옆으로 호수를 꽂는다.

 

사진으로는 작게 나왔지만 실제로 가서 본다면 크기와 은은한 붉은 옻칠에 압도될 것이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유물이 갖고 있는 힘이고, 아름다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