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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흥선대원군의 장손 영선군永宣君 이준용李埈鎔(1870~1917)의 글씨고,
오른쪽은 조선 말기 난초 그림의 명수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1855~1921)의 글씨다.
이 둘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아주 가까웠다.
소호는 흥선대원군의 겸인傔人(양반의 비서나 시종 역할을 하는 하인)이었다고 하며,
영선군이 일본으로 망명할 때 그를 호종하여 10여년간 같이 일본에서 머물렀다.
이 글씨들도 '조선朝鮮', '한인韓人'이란 표현으로 보아 일본에서 쓴 것이다.
같이 지내면서 기질이 비슷해진 것인지, 영선군이 소호에게 서화를 익힌 것인지,
흥선대원군 슬하에서 벼루를 같이 쓰며 글씨를 배운 것인지,
1900년대 일본 서화계의 영향을 같이 받은 것인지 (혹시 대필?) 전후 사정은 좀 더 따져봐야겠다.
하지만 인상비평을 하자면 글씨체만으로는 거의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영선군 쪽이 조금 뻣뻣하고 소호가 훨씬 유연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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