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몇 번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이란 분을 언급한 적이 있다.
'소연'이란 그의 또 다른 호를 밝히기도 하고 그 부친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1861-1934)과의 관계를 찾기도 해서 나하고는 퍽 인연이 있는 화가인데, 우연히 그가 1918년 친 난초 반절지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 언제 그렸는지가 명기된 경우는 아주 드문데, 정작 작품을 보니 이름만 가린다면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1855-1921)의 솜씨가 아닌가 할 만하다.
아니, 화제 글씨는 소호의 전형적인 하소기何紹基(1799-1873)체 행서고 난은 소호 초기 스타일, 더 정확히는 석파 이하응(1820-1898)의 리드미컬한 춘란이다.
일부러 모사를 했나 싶을 정도로 방불하지만, 자기 스타일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뿌리가 드러난 노근란을 그렸는데 근대 서화가 중에 이런 난초를 친 이가 제법 있다.
이를 두고 "뿌리 뽑힌 조국의 비애"란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행한 화법이라고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소호에게 호운이 직접 배운 건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작품으로 보나 호로 보나(호수 호 자를 따서 지은듯) 적어도 당시 화단에 석파와 소호의 영향이 컸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는 될 것이다.
1918년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호가 호운 아닌 소연이었지만...어쨌건.
화제는 오언절구 한 수인데, 같은 화제를 소호도 쓴 게 더러 전한다.
곧고 편안한 향기는 운치가 있고
빼어난 품성 다만 가지런하지 않네
깊은 산에서부터 옮겨와서는
책상 옆 그윽한 데에다 심어두었네
貞安香有韻 逸性只無侔 移自深山處 栽培几案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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