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다른 생산방식은 다른 정치체를 낳는다

by 초야잠필 2024. 5. 24.
반응형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왜에 대한 기술에서 눈에 띄는 것이 이것을 정치적 성장이라고 보아도 되겠고,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열도에서 보이는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통일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는 야요이시대 이래 일본열도가 공유한 집적화한 도작 농경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한반도의 경우 

물론 상당한 정치적 통합과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와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가 보기엔 이렇게 보이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은 한국사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서 보이는 각 지역별 농업생산의 차이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북부에서 성립한 위만조선과 한 군현은 그 지역 농업생산 방식에 비슷한 무리끼리 통합을 이루었을 테고, 

한반도 남부 역시 마찬가지로 이 지역 통합은 한반도 북부보다 강화한 도작과 관련이 있으리라 본다. 

게다가 한반도 남해안 지역에 뭔가 이질성이 눈에 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중부지역의 도작과는 또 다른 성격의 이질성을 이 지역이 지닌 결과라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 남북조의 대립은 화하와 유목민족 등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남조와 북조의 경계가 잡곡 농경과 도작 농경의 경계선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사는 만주부터 남해안까지 길이 방향으로 길게 뻗어 북쪽과 남쪽의 위도 차이가 상당한데

이는 결국 농업 생산 방식의 차이를 낳았고

한반도와 만주 전체가 하나의 역사권역으로 결국 묶이지 못한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고 본다. 


*** previous article ***


야요이 농경의 기원은 한반도 난대림 지역을 주목해야

 

남북조, 심지어는 금과 남송의 대립도 진령회하선과 농작물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