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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잡곡농경을 폄하하면서도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한국 문명의 찬란한 부분으로 인식한다.
이들도 쌀밥을 먹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학계의 생각처럼
십이대영자와 정가와자가 전기고조선을 대표한다면
이들이 쌀밥을 먹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들은 기장과 수수, 조밥을 먹었을 것이다.
한국문명의 절반은 잡곡문명인데,
우리는 이 잡곡문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잡곡문명은 도작보다 열등한 문명으로 인식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흔히 말하는 만주벌판을 뛰어다니던 우리 조상들은
쌀밥 먹던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노란색 기장과 조밥
빨간색 수수밥을 먹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한강유역을 차지할 때까지는 쌀밥 구경은 못하고 살았음에 틀림없다.
평양일대의 논 비율이 조선시대 전기까지도 10프로정도였는데,
이런 사회가 어떻게 도작사회이겠는가?
한반도 남부의 시각에서 만주를 올려다 보고
도작의 시각에서 잡곡문명을 재단하는 습관을 벗어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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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et은 쌀보다 열등한 곡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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