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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로 농경이 확산하는 단계에서 최소한 두 번의 변화를 우리는 점칠 수 있다.
첫째는 한반도에 먼저 들어와 있던 잡곡농경에 도작농경이 결합하는 단계다.
이 두 가지 농경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도입 시기는 도작이 잡곡보다 늦고,
도작은 한반도로 넘어오자마자 북쪽은 관두고 남쪽으로 확산을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북부 어딘가에서 도작과 잡곡농경이 대대적으로 합쳐지는 단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혼합농경은 한반도 남부로 확산되어 갔을 텐데,
이 혼합농경은 도작과 잡곡의 하이브리드라 하지만 그 안에서 차지하는 도작 비율은
조선시대 전기 한반도 북부지역의 논 비율 10프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러한 혼합농경이 남하해 가는 단계 그 어딘가에서
도작 비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 두 번째 단계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이 단계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있었을 수도 있고,
혹은 일본 열도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는데
현재로서는 일본 열도에서 농경이 도입된 초창기부터
쌀농사가 고도로 발달한 형태로 나오는 것을 보면,
혼합농경에서 쌀농사 비율이 급증한 지역은
역시 한반도 남해안 해안지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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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명의 절반은 잡곡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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