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내용을 구속한다, 부장품의 경우
이에 이어지는 글이라 생각해 주면 좋겠다.
오사카부大阪府 사카이시구堺市堺区 대선정大仙町에 소재하는 다이센료고훈大仙陵古墳[대선릉고분], 또는 다이센고훈大山古墳[大仙古墳] 개요는 앞서 대략 정리한 적이 있거니와, 이번에는 그 구조 양상과 발굴 내력을 정리하고자 한다.
앞 구글어스에서 보듯이 무덤 주인공을 묻는 직접 시설은 후반부 뒤쪽 북쪽에 둥근 봉분을 만들고, 그 앞쪽 남쪽에다가는 전방부前方部라 해서 마당처럼 두었다.
전방후원분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계속 쓰쿠레다시造出し라는 말이 보였거니와, 그 개념에 대해서는 앞서 여러 번 설명한 적이 있어 생략하되, 이 대선릉고분에서도 그것이 있음을 상기하는 한편,
나아가 전방후원분에서는 또 쿠비레부くびれ部 라는 말도 자주 마주하거니와, 이건 따로 학술적 고고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후원부와 전방부를 연결하는 지점 혹은 경계라 생각하면 되겠다. 허리춤이다.
전방후원 개념도를 두어 가지로 소개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전방후원분 배치 양상이다.
나는 이 전방후원분이 사람 형상, 곧 선 모습을 구상화한 것이라 보는데 둥근 쪽이 얼굴이요 그 아래가 몸통 이하다.
쓰쿠레다시는 위치가 다양하나 귀 혹은 팔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것이 저 다이센고분에서는 어찌 구현되는가?
앞 구글어스 지도에서 옆구리 양쪽으로 튀어나온 붉은 동굴배기 지점이 쓰쿠레다시다.
보다시피 전방부前方部와 후원부後円部 열결 지점 쿠비레부くびれ部 양쪽에 돌출한 지점이다.
분부墳丘는 보통 3단으로 흙을 쌓아올려 만드는데 이 다이센고분도 그런지는 발굴조사가 없어 알 수는 없다. 아래 그림과 같다.
보다시피 무덤은 외곽으로 현재 3중 주호周濠[해자]로 둘러친 모습이다. 이중으로 볼 여지도 있겠지만 본래는 삼중이었던 듯하다. 에도시대 원록元禄 연간 당시 기록을 보면 이미 그때 해자 일부를 개간했다 하지만 에도시대 회화 선송령회도 상舳松領絵図上을 보면 세 번째 해자가 서남쪽 귀퉁이에서 잔존함을 본다. 따라서 본래 해자는 본래는 3중이었다고 보아 대과가 없을 것이다.
지금 보는 3중 해자는 1896년, 명치明治 29년에 파서 복원한 것이다. 다만 그때 복원 공사가 본래 모습을 살린 것인지는 의문이 있다.
이 주호周濠 경계 담장을 안쪽에서부터 차례로 제1제堤와 제2제로 부르지만 이는 순전히 지금 관점에서 부여한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2021년, 제1제를 발굴조사했으니, 그 결과 폭 약 2m 상당 양쪽에 지름 30~35㎝ 정도 되는 원통식륜円筒埴輪을 두 줄을 이어 매설한 흔적이 발견되고 이 두 줄이 제1제를 다 둘렀다고 생각된다.
당시 발굴 지점과 발굴 양상을 전하는 일본 언론 기사 첨부 도판을 소개한다.
이걸 보면 제1제 6군데 트렌치를 넣었음을 본다.
이 다이센고분은 천황가 자산을 관리하는 궁내청이 주인이라 발굴이 여간 까다롭지 않은데, 저때는 어찌하여 궁내청에서 발굴을 허가했는지 모르겠다.
나아가 저때 발굴에서 귀인貴人이 쓴 립笠을 본뜬 목제품이 발견되어 이 제방이 5세기 전반에서 중엽 무렵에 만들었다는 추정된다는 한다.
저때라면 황남대총이 만들어지던 그 무렵 아닌가 하는데, 한반도나 일본열도 모두 무덤 만들기를 통한 힘 자랑 무식했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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