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통
소위 마왕퇴 백서(馬王堆帛書) 중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에 이르기를,
“漬女子布, 以汁傅之”
라 했으니, 예서 말하는 여자포란 곧 월경포(月經布)라, 요새 말로 하자면 생리대다. 여자 월경포를 물에 담갔다가 그 배어나온 핏물을 화상 부위에 발라준다고 했다. 당대唐代 명의 손사막(孫思邈)이 정리한 《천금요방千金要方》 권25에 이르기를,
“일체 화상을 치료하는 처방 : 처음 증상 때에 곧바로 여인의 정즙을 발라주면 낫는다”(治一切火所傷方 : 初著, 卽以女人精汁涂之差)
고 했다. 이에서 말하는 정즙은 애액을 말하는 듯하나, 전후맥락, 다른 문헌을 종합할 때 월경수일 가능성이 크다.
《오십이병방》이란 중국 전한시대 제후국 고위 관리 집안 공동묘지인 장사(長沙) 마왕퇴 한묘(馬王堆漢墓) 중 제3號 漢墓 출토 14종 의서(醫書) 중 약물학 관련 처방서이니, 전서(篆書)로 24센티미터 반폭 비단에다가 기록했다. 성서成書 시기는 대략 전국시대로 간주하며, 병증을 나열하면서 그에 대한 처방을 정리한 것이니, 책 이름은 이런 내용에 따라 그것을 정리한 조사단이 붙인 것이다.
생리통
매 항목에는 어떤 한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에 등장하는 병명은 모두 103가지. 각 질병별 처방은 적게는 하나에서 수십 개에 이른다. 여기에는 단방單方·복방復方 다 있으나 복방이 위주다.
복식 기구류 약물 10종 중에 여자포(女子布), 곧 월경포와 여자초유포(女子初有布), 곧 여자 초경 때 쓴 월경포가 들어 있다.
《황제내경黃帝內經》 오장별론(五臟別論)에서는 자궁子宮을 여자포(女子胞)라 하면서, 자궁은 여성에만 있는 장기이며, 오장육부와는 그 작용이 다르다 해서 기항지부(奇恒之府)라고 일컫기도 했다.
월경피를 상처 부위에 바르는 이런 일은 현대의학 관점에서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외우畏友 신동훈 서울대의대 교수에 의하면 화상 부위에 다른 사람 피를 바르는 저런 행위는 무엇보다 간염 옮기는 데 직빵이라 한다. 나아가 저에선 포를 빤 물을 발라주라고 했지만 틀림없이 그냥 쳐바른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 한다.
이 월경수月經水에 얽힌 일화로 가장 유명한 주인공이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 원효다. 《삼국유사》가 저록한 지금의 강릉 낙산사 이야기에 의하면, 원효는 의상이 낙산사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도 관음보살 한 번 만나보겠다고 지금의 경주를 떠나 낙산사로 행차한 모양이라, 그 어중간에 자기 생리대를 냇가에서 빠는 흰옷 입은 젊은 여성을 조우한 바, 목이 말라 물 한 잔 달라했더니, 그 여인네가 그 생리대 빤 물을 한 바가지 주는지라, 더럽다 해서 버리고 말았다 하거니와, 나중에 보니 그 흰옷 입은 여인이 관음보살 현실이었던 것이다.
부처 제자 중 이른바 민중한테서 가장 사랑받은 관음보살은 성별로 보면 분명 남자지만, 어머니 같은 자비심 상징이라 그래서인지 자주 여자, 특히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때로는 관능의 중년 여성으로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저 원효 이야기에서 관음이 바로 그러하다.
저 이야기가 말하는 대의大義는 볼짝없이 네 마음의 병을 씻으라는 뜻이어니와, 약물을 버렸다 함은 원효가 그 마음의 병을 못내 버리지 못했다는 뜻에 다름 아니거니와, 그런 까닭에 그는 관음을 제대로 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태종무열왕 딸 요석공주와의 로맨스에 따른 그의 파계를 은유하지 않나 하거니와, 그에 견주어 끝까지 계율을 지킨 의상은 대서특필되고 있음을 본다.
이 월경 관련 이야기로, 18세기 에도 막부 유학자이자 의사로서 부산 초량왜관에 머물기도 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1668~1755)가 쓴 《유년공부酉年工夫》라는 설화집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아래아는 표기법상 윗아 표기로 고쳤거니와, 이 자료는 국어학 전공자인 정승혜 수원여대 교수가 소개했음을 밝힌다.
月脛이란 거슨 열병의 奇特하매 먹으되 傷寒 열병의는 이레가 된 後의야 먹으면 둇고 月脛도 갓 날 제 조흔 셔답을 고 그 안 뵈 헌 거슬 노왓다가 月脛이 믓거든 卽時 빠혀내여 서늘한 데 펴 거러두면 마르니 쓸 때예 虛 病人은 찹쌀믈 달혀 차게 채온 후에 月脛을 담가 두면 몰슉 난 후에 헌 거슬 집어낸 후에 그 月脛을 먹으면 極히 둇사오니 疫疹의는 起脹을 잘못하거나 貫膿을 잘못하거나 그 심시예 月脛을 絲瓜믈의 내여 년하여 먹으면 쉬이 거문 後의 收[厭+面]落介을 잘 하압나니
정 교수에 의하면 이 내용은 아메노모리 호슈가 부산에 와 있을 때 들었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이 자료에 대해서는 내가 상세히 검토한 바 없으므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갑설周甲說과 교치설僑置說, 역사를 난도질하는 두 주범 (0) | 2019.04.14 |
---|---|
담양에서 나는 청대죽靑大竹 (0) | 2019.04.10 |
모란이라고 다 같은 모란이 아니다 (0) | 2019.04.07 |
희한한 듯하나, 보편성을 보여주는 심원권 일기 (0) | 2019.03.27 |
형제자매兄弟姊妹란? (0) | 2019.03.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