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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당진 성산리산성唐津城山里山城, 아산만을 감시하는 한성백제의 관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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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출토토기류



Archaeologists have uncovered the fact that Seongsanri Fortress at Dangjin-gun County, Chungcheongnamdo Province was built and operated by Hanseong Baekje during the 4th and 5th centuries. 



"당진 성산리산성은 백제가 세운 대고구려 방어기지"

송고시간 | 2019-08-01 10:37

석심과 목심 활용한 축조기법 확인…4∼5세기 유물 200여점 출토

군막사 추정 건물터 유적 6기도 나와


(첨부사진은 모두 조사기관인 금강문화재연구원 제공이다.) 





이 지도를 보면 이번에 발굴조사한 성산리산성이 지닌 지정학적 특징이 고스란하다. 

아산만 초입 관문이다. 


나아가 전통시대 해안을 따라 집중적으로 배가 오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비단 아산만만이 아니라 서해를 오가는 배들이 통과하는 지점이라는 점이다. 




보다시피 산성이라 했지만, 험준한 그런 곳이 아니라 평야지대 가운데 불뚝한 해발 60미터가량 되는 야트막한 산 정상을 중심으로 그 테두리를 두른 성이다. 




이번에 이곳을 판 모양이라, 발굴지점은 그 성 내부 건물지가 있을 법한 평탄대지와 그 주변 성벽을 째보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우선 성벽이 축조된 방식과 그 시점, 그리고 이 성벽이 보호한 내부 시설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이 성 전체가 어느 시대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팠더니 건물터가 제법 나왔다. 한데 건물터 윤곽을 그린 데서 볼 수 있듯이 네 모서리 각을 줄인 이른바 평면 말각抹角 방형이 주류를 이루되, 개중 하나는 그 변형인 凸자형이다. 3~4세기 한성백제주거 양식에서 전형으로 드러난다. 주로 한강 유역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집중적으로 확인한다. 


이는 토기류를 중심으로 하는 출토 질그릇에서 확연하다. 세발달린 접시인 삼족배를 포함해 전형적인 한성백제 질그릇이 쫘르륵 쏟아졌다. 




1호 주거지다. 이 역시 한성백제시대에 많이 나타난다. 상단 왼쪽 시설물을 구들이라 하는데, 글쎄 구들로 봐얄지 나는 언제나 의문이다. 아궁이와 그 연기를 빼내는 굴뚝에 가깝다. 페치카형이다. 


저리 만들기도 하고, 저렇게 만든 굴뚝 연기굴을 벽면을 따라 죽 내기도 한다. 보온 효과도 노렸을 것이로대, 저게 참말로 지랄 맞아 저 구조는 걸핏하면 굴뚝이 터져 자칫하면 방안 곳곳이 연기 풍년이 들기도 한다. 


뽕뽕 둥근 표시는 나무기둥을 박은 자리다. 별거 아니다. 고고학도라서 저런 흔적 찾는 게 아니다. 누구나 삽질 좀 하다 보면 저런 흔적은 금방 찾는다. 





6호 주거지라 명명한 곳인데, 기둥 흔적을 보면 뭔가 문화층이 뒤섞인 느낌이다. 더 파제껴얄지 모르겠다. 앞서 본 1호 주거지 기둥구멍도 저 건물 자체와 밀접한지 나는 자신이 없다. 정형성이 전연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내부 조사야 글타 치고 이제 성벽을 쨌다. 째기 전 상태는 성벽인가 아마추어 눈으로는 알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불어 째기 전에는 흙더미로 쌓은 이른바 토성으로 보였다. 한데 깠더니 좀 묘하다. 


성벽은 저리 한가운데를 쫙 째야 한다. 안에서 바깥까지 지체없이 죽죽 좍좍 째야 한다. 


쨌더니 저 모양이다. 성벽 중심 구역이라 할 만한 곳을 보면 돌더미 잔뜩이다. 조사를 위해 부러 저리 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든 조사 결과를 보면 왼쪽 성벽 바깥쪽으로 돌더미를 쌓아올렸으며, 성벽 안쪽으로 돌더미와 흙을 섞었음을 엿본다. 





이게 아마 바깥쪽에서 올려다본 성벽 모습인 듯한데, 기존 우리한테 익숙한 삼국시대 성벽이랑 여러모로 댜른 느낌을 준다. 

이것이 애초 성벽 흔적인지, 혹은 그 후대 잦은 개보수 흔적까지 포함한 것인지는 발굴단에서 어찌 보았는지 당장 확인하지는 못했다. 




성 바깥쪽 낭떠러지 지점으로는 이런 식으로 흙을 다져 쌓았다. 

한데 그 흙더미를 직각으로 내려뜨리는 구멍이 뽕뽕 드러난다. 

뭐겠는가?

볼짝없다. 

고고학이 고상하다 생각하면 안 된다. 

일상일 뿐이다. 그것이 무에 독특한 학문이겠는가?


나무를 쑤셔 박은 기둥구멍이다. 

말목을 열라 쳐박은 것이다. 


저 말목들이 성벽이 흘러내림 등등을 막거나 했을 것이다. 

풍납토성에서도 저런 방식 나무 구조물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설봉산성에서도 봤고 설성산선에서도 봤다. 


뭐 암것도 아니다. 


한데 토층 양상을 보면 아래쪽일수록 뻘에 가깝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도 뭐 대단한 기술 아니다. 

아마추어도 저런 거 지어보면 안다. 

점성이 강한 흙일수록 아래 깔아야 한다. 


냉면에 고기를 넣을까 말까 스님한테 식당 종업원이 여쭤 보니 

"밑에 깔어 XX야"라고 했다지 아니한가? 


그나저나 이번 조사는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유산협회가 비지정 매장문화재를 대상으로 공모한 '매장문화재 학술발굴조사 활성화 사업'으로 이뤄졌다 하는데, 장학사업 하겠다고 25억원을 쾌척하겠다는 영남문화재연구원 이사님들아. 


장학금 명목으로 농가먹을 생각말고 이런 일 좀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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