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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증언하는 흑사병(4)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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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 참상을 증언하는 그림인데, 그 공포는 그림 이상이었던 듯하다. 

 

또 죽은 사람 가운데 그 유해가 성당으로 운반되어 갈 때﹐ 열이나 열두 사람 이상의 이웃들이 따라기는 일은 극히 드물게 되었습니다. 관을 메고 가는 사람들은 지위 높은 유지들이 아니라 하층 계급에서 끌려나온 무덤 파는 천한 인부들이었으며, 그들은 돈을 받고 대신 관을 메어 주었습니다. 이런 인간들은 죽은 자가 생전에 정해 놓은 성당이 아니라 아무데나 제일 가까운 성당으로 몇 개 안 되는 촛불을 켜든 네 사람이나 여섯 사람의 수도사들과 함께 아니 수도사가 한 사람도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만, 총총히 관을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사들 역시 엄숙하게 긴 기도 같은 것을 의지도 않고 방금 말한 사람들의 손을 빌어﹐ 파둔 구덩이가 있으면 아무 데나 즉각 관을 묻어 버렸습니다. 


하층 계급이나 중산 계급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는 더 비참한 양상을 볼 수 있었읍니다. 말하자면, 그들 대부분이 가난한 탓인지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선지﹐ 저마다 자기 집이나 구역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매일 몇 천 명씩 감염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간호는커녕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 채 거의 살아나는 일 없이 모두 죽어 갔습니다. 그러므로 밤낮없이 길거리에서 숨져 가는 숱한 사람을 볼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죽는 사람은 더 많았으며, 이웃 사람들은 시체에서 풍겨 오는 악취로 누가 죽었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되는 형편이었읍니다. 그리하여 저 사람도 이 사람도 하는 식으로 모두가 죽어 가서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데카메론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망인(亡人)에 대한 동정심은 고사하고﹐ 시체가 썩어서 자기들에게 병이 옮겨 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모두 똑같은 예방 수단을 강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그리고 사람이 있을 때는 그들의 손을 빌어 시체를 집 안에서 들어 내다가 문간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아침 같은 때 거리를 지나 가면 죽어 간 사람들을 헤아릴 수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관이 오면 거기에 넣게 하는 것입니다만, 관이 부족해서 널빤지에 얹어서 들고 가는 일도 흔했지요.


게다가 한 관에 둘 혹은 세 사람의 시체를 넣는일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더우기 아내와 남편, 형제 두세 명, 또는 아버지와 자식을 함께 넣은 관 같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지요. 그것은 두 사제가 그 중 한쪽이 십자가를 들고 걸어가면, 인부가 운반하는 관이 서너 개나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수도사가 시체 하나를 묻으려고 간 장소에 여섯 명, 여덟 명을 한꺼번에 묻게 되는 일이 흔했읍니다.

 

 

이런 시체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촛불을 켜는 사람도 예배보러 오는 사람도 없이 인간이 죽어 갔는데﹐ 오히려 산양 한 마리 죽은 것만큼도 돌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순조로울 때라면 현명한 사람도 어쩌다 일어나는 사소한 타격을 참지 못하는데 이렇게 재앙이 커지니까 무지한 사람들도 참을성이 있게 되어서 무슨 일에나 무관심해져 버리는 사태가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데카메론의 참상과 결코 과장이 아님을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웅변한다. 


아뭏든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성당이고 날마다 끊임없이 시체가 산더미처럼 운반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묻을 묘지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옛 습관대로 각자 제 무덤에 묻히고 싶어하지만 어디나 꽉 차서 성당마다 묘지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파져서 그 속에 몇 번씩이나 시체가 잇달아 들어갔습니다. 그런 구덩이 속에는 배에 짐을 싣듯이 몇 층으로 시체를 포개 놓았습니다만, 구덩이는 금방 가득차서 밖으로 넘쳤읍니다.

 

이렇듯 우리 시에서 일어난 지금까지의 비참한 일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드렸으므로 이 이상 쓰지 않겠읍니다만, 그와 동시에 주변 시골에서도 적지않이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그런 시골에서도 (성벽에 둘러싸인 마을은 조그마한 도시와 비슷하기 때문에 언급하지않기로 하더라도) 집이 드문드문 서 있는 마을이나 밭에서는 비참하고 가난한 농부와 그 가족들이 의사는 물론 하인의 간호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나 밭이나 집안에서 인간이 아니라 마치 짐승처럼 방치되어 밤낮없이 죽어 갔습니다.

 

죽음을 다 수용하지 못하는 시대다.


그 때문에 그들도 도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재래의 습관을 등한시하게 되고﹐ 신변의 일이나 일과를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마치 죽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가축이고 토지고 과거의 노고가 가져온 성과를 일체 돌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 있는 것은 온갖 지혜를 다 짜내서 소비해 버리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형곤 옮김 《데카메론》, 학원출판공사, 1985에서 전재함)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증언하는 흑사병(3)

또 개중에는 (우연히도 성격적으로 박정했기 때문이겠지만) 환자를 그대로 두고 달아나 버리는 것이 그 무서운 흑사병을 막는 최량의 약이라고 말하는 매우 잔인한 생각을 품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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