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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증언하는 흑사병(3)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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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균, 위키피디아 from wiki 'Peste nera'에서

 

또 개중에는 (우연히도 성격적으로 박정했기 때문이겠지만) 환자를 그대로 두고 달아나 버리는 것이 그 무서운 흑사병을 막는 최량의 약이라고 말하는 매우 잔인한 생각을 품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생각으로 남자나 여자나 자기 이외의 다른 것은 조금도 돌보지 않고 자기가 살던 시를 버리고 집도 땅도 친척도 재산도 버리고 다른 토지나 교외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느님의 노여움이 이 흑사병의 힘을 빌어 인간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시의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을 깡그리 말살해 버리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시에는 누구 하나 사람의 그림자가 남지 않게 하여 이제 인류의 마지막이 온 것을 경고하고 있는 듯도 여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갖가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전부 죽은 것도 아니고 전부 액운을 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마다의 의견 때문에 많이 감염되어 죽었고﹐ 자기들이 건강할 때는 여전히 건강한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었지만, 한번 병이 걸리면 그만 별 도리 없이 도처에서 버림받고 돌보는 사람이 없어지는 형편이었습니다.

 

Black Death Sick in a miniature of the fifteenth century, from wiki 'Peste nera'


이렇게 하여 시민들은 서로 왕래하기를 피하고, 이웃끼리조차 간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친척끼리도 서로 이따금밖에 아니 거의 방문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 재난은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의 가슴속에 매우 큰 공포심을 번지게 했으므로, 형은 아우를 아저씨는 조카를 언니는 동생을 버렸을 뿐 아니라, 때로는 아내가 남편을 버리기조차 하는 형편이었읍니다. 또 (거의 믿어지지 않을 정돕니다만) 부모들이 아이들을 마치 자기 자식이 아닌 것처럼 간병도 않거니와 찾기조차 피하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한번 발병하면 친구들의(그것도 극히 소수였읍니다만) 동정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부당하게 막대한 급료로 일하는 욕심많은 하인들의 간호를 받는 이외에 무엇 하나 의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능한 남녀 하인들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간호에 익숙하지 않은 자가 대부분이어서, 병자가 달라는 것을 건네주거나, 임종의 물을 떠주거나 하는 것 이외에 거의 아무것도 할 줄 몰랐습니다. 이런 하인 노릇으로 막대한 보수를 받으려다 자신이 희생되고 만 자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병자는 이웃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고 하인도 귀해졌으므로, 여태까지 들은 적도 없는 괴상한 습관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우아하고 또한 아름답고 예의 바른 부인이라도 한번 병에 걸리면, 젊었거나 늙었거나 누구든 일체 상관 없이 남자 하인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병 때문에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여자 앞이라면 모르되 남자 하인 앞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온 몸의 모든 부분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읍니다. 나중에 병이 나은 부인들 사이에 정결함이 덜해진 것은 아마도 이것이 원인이었던 모양입니다.

다시 이런 것 이상으로 치료만 잘했더라면 살았을 사람들이 불행하게도 많이 죽어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병자가 적당한 시기에 간호를 받지 못했고, 또 흑사병이 너무나 맹렬한 기세를 떨쳤기 때문에 눈으로 보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듣기만 해도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시에서 죽어 간 것입니다. 그 결과 살아 남은 사람들 사이에 필연적이라고나 할까요﹐ 전에 없던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니 지금도 이따금 볼 수 있습니다만) 이웃 사람들이나 친척이 초상집에 모여 고인(故人)과 가장 친했던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곤 했습니다.

 

흑사병 진행상황


한편 그 집 앞에는 친척들과 함께 이웃 사람들과 시민들도 많이 모여, 고인의 신분에 따라 사제가 찾아 오고﹐ 유해는 고인과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촛불을 손에 들고 성가를 부르는 장례 행렬을 지어 고인이 생전에 택했던 성당으로 운구되어 가곤 했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풍습은 흑사병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자 거의 대부분 아니 깡그리 없어져 버리고 이 시에는 새로운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읍니다. 즉 사람들은 간호하고 돌봐 주는 여자도 없이 죽어갔고﹐ 임종의 입회인도 없이 이 세상의 생(生) 을 마쳐 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친척들이 울며 불며 슬퍼해 주는 사람은 아예 하나도 없는 형편이었으며, 오히려 상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왁자하게 마치 축제 소동을 일으키는 습관이 생겨 버렸습니다. 여자들은 거의 여자다운 연민의 정을 잃고, 자기들의 건강만을 크게 기뻐하여 만족하게 되어 버렸읍니다.

 

(한형곤 옮김 《데카메론》, 학원출판공사, 1985에서 전재함)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증언하는 흑사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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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코로나19 사망자 5천명 넘어…하루새 651명 증가(종합)

 

이탈리아 코로나19 사망자 5천명 넘어…하루새 651명 증가(종합) | 연합뉴스

이탈리아 코로나19 사망자 5천명 넘어…하루새 651명 증가(종합), 전성훈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3-23 03:20)

www.yna.co.kr

송고시간 2020-03-23 03:20
전성훈 기자
총 5천476명…누적 확진자는 5천560명 증가한 5만9천138명
치명률 9.26%, 한국 8배…콘테 총리 "2차대전 이후 최악 위기"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5천명을 넘어섰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22일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으로 전국 누적 사망자가 5천476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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