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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다.
나는 조선시대를 보며 풀지 못할 의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조선은 무슨 생각으로 향리(아전)들에게 엽전 한 푼 안주고 부려 먹을 궁리를 했을까?
놀랍게도 조선시대 아전은 자기가 아전 노릇한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도 돈 한 푼 받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전 노릇은 대대로 세습되었다. 미칠 노릇아닌가? 무료봉사를 대대로 하라니.
나는 그래서 춘향전의 이방만 보면 슬프다.
가렴주구를 조선시대 이방에게 뒤집어 씌우는 자들은 전후사정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라에서 하라 해서 일을 했는데 돈 한 푼 못받으니 남은 것은 삥 뜯는 방법, 횡령하는 방법 말고 생계수단이 뭐가 있으랴?
이 말은 내가 가끔 농담 삼아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거 알고는 있냐고 물어보는데 대부분 믿지를 않는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국박에 가서 우리 찬란한 문화를 감상하는 분들은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찬란한 문화의 바닥에는 무료봉사한 아전들의 땀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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