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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신라장적문서에서 신라의 산성을 본다

by 초야잠필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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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말, 신라의 땅에 만들어진 산성들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정밀함, 규모, 군사적 입지, 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탁월하게 보인다.

당시 정립한 삼국이 모두 비슷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규모의 정밀한 산성이 구축된것은 아마도 신라땅이 확연했던 것 같고, 이런 추세가 신라의 삼국통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런 산성이 만들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판도안에 존재하는 촌락민에 대한 엄정한 파악이다. 인구와 생산력이 정확히 파악되어야 성을 쌓던 군사를 만들던 했을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신라장적 문서를 본다. 현재 2종이 일본에서 파악된 이 문서를 보면, 인구부터 각종 생산물의 물량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어 신라의 "둠스데이북"이라 할만하다.

역사서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이런 둠스데이 북이 통일전이라도 어느시기엔가 시행되지 않았을까?

현재 신라장적 문서는 7세기 후반까지 추정연대가 올라간것으로 아는데 필자가 억측을 해보자면 이런 류의 촌락민과 그 산물에 대한 전일적 지배는 신라가 지배하는 땅 전체에 광범위하게 행해졌고 그 시기는 신라가 한강 이남에 자기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던 6세기 아니면 혹 그 이전까지도 그 전통은 소급되는것 아닐까 한다.

그 증거? 없다. 다만 신라 땅안에 삼국시대 후반 등장하는 그 산성의 규모와 설계, 짜임새를 보면 석고제로 국가의 생산력을 완벽히 파악한 에도시대 축성물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한 산성은 백성과 산물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는 절대로 나올수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삼년산성. 5세기에 쌓았다는데 원래부터 저랬는지는 모르겠다.



**** 편집자주 ***


필자가 말한 신라장적문서는 본래 이름이 아니라 없다. 편의상 연구자들이 그리 붙였을 뿐이다.

신라촌락문서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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