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신동훈 선생도 썼듯이, 신흥무관학교랑 육사는 도대체가 접점을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다. 시대와 공간 모두 딴 세상을 살았으니, 무슨 접점이 있겠는가?
1910-20년대 만주에서 반짝하다 분해해 버린 신흥무관학교가 그 빛나는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어져 어떤 식으로건 육사로 이어졌다는 등식을 나는 도대체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다. 둘은 별개다.
단, 육사가 별칭 화랑대이듯이 그 정신 연원을 신라 화랑에서 찾는다는 그 맥락에서라면 이해하며 수긍한다. 육사가 화랑대를 별칭으로 쓴다 해서 그것이 신라 화랑과는 눈꼽만큼도 원인 결과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흥무관학교가 표방하는 무장독립투쟁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한다면야 누가 말리겠는가?
그렇다면 육사는 이후 범 광복군이라 칭할 수 있는 무장독립계열(특히 해외 기반)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역시 찾기가 사막에 난 콩 이파리만큼이나 힘들다. 물론 굳이 찾으려면 있기는 한데, 그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육사는 그 직접 연원이 미군정 시절인 1945년 12월 5일 60명으로 시작한 군사영어학교인데, 그 학생은 일본 육사나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들이었고, 교수진도 당연히 저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 학교는 이듬해 4월 30일 폐교하고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거쳐 같은해 6월 15일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지나 1948년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라는 간판을 비로소 내건다.
우리가 아는 4년제 육군 장교학교 육사는 한국전쟁 기간 중인 1951년 10월에 모집한 11기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이 대표하는 육사 11기가 자부심이 강한 이유는 바로 이에서 말미암는다. 그들이 무슨 친일과 관계 있겠는가?
광복군은 저 육사 창설 초기 운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그나마 광복군과 육사 고리를 찾아 보면 역대 육사교장 이력에서 몇몇이 있으니, 중국 국민당 장교 출신이 6.25 이전에 역임한 사례가 있다.
47년 4대 송호성 보정군관학교
48년 6대 최덕신 황포군관학교
49년 7대 김홍일 귀주군관학교-남경육군학교
50년 8대 이준식 운남군관학교-광복군
등이 그들이며, 또 직접적으로는 51~52년 9대 안춘생(안중근 조카)이 남경 육군군관학교-광복군 출신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얼마 전 이종찬 광복회장이 국방부장관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한 바로 그 안춘생이다.
이들은 철저히 개인 베이스로 등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몇몇 인물은 이후 행태가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 1889년생 송호성은 여순사건 당시 진압에 미온적이어서 미군정과 이승만 눈밖에 난 데다 결정적으로 6.25 때 서울에 남았다가 납북되고 말았으니 철저히 지워진 이름이다.
만주 군관학교 혹은 일본 육사가 싫다고 그 자리에다가 중국 국민당을 갖다 놓는다? 이 역시 쪽팔리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말이다.
자주 국방? 그것이 외세 배격이며, 친일에서의 혐의 자유라 하겠지만, 근대의 군대가 우리 자발로 훈육하고 육성한 것이 아니며, 철저히 외부에서 유입한 그것인 이상, 더구나 없는 나라가 느닷없이 1948년 생겨난 마당에, 그 토대 원천이 되는 물적 인적기반이 피식민지시절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주도하지 그렇다면 누가 만든단 말인가?
또 한 가지, 만주군관학교 혹은 일본 육사 출신이라 해서 그들이 그런 까닭에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본분 혹은 사명에 투철하지 못했는가는 전연 다른 문제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 역시 철저한 영국 제국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 애국심은 내가 일본 군관학교 출신이기에 희박하거나 없는 것이 아니다. 일본 군대에서 교육받고 장교를 역임했다 해서 그 사람 애국이 덜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일본 육사 혹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울 수는 없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는 내 어머니 아버지가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제시대 훈육을 받았다 해서 그것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랑 똑같다.
더구나 1921년생 아버지는 창씨개명을 했고, 태어날 때 대일본제국 신민이었고, 해방된 그날 이미 스물다섯 청년이 되기까지 줄곧 대일본제국 신민이었지만, 당신이 대일본제국 신민이었다 해서 나는 당신이 부끄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초기 육사 관련 광복군 출신 관여자는 A씨 도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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