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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무지렁이 소작농을 주문하는 역사

by taeshik.kim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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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쟁의 경과를 보도하는 조선일보 1924년 7월 23일자

 

식민지시대에 조선에 사는 조선인으로 좀 배웠다는 사람으로 이른바 지조를 지키며 살았다는 사람들은 거개 열라 부자였다.

그 재산은 거개 조선시대 이래 선대에서 물려받았으니 거개 지주였다.

이 사람들은 거개 조선시대 산림처럼 소작료 따박따박 챙기며 고향에서 은거하며 지내거나 혹 이른바 국학이니 한학이라 해서 가끔씩 신문이나 잡지에 논문 논설을 썼다.

이 사람들은 천만다행히도 해방이 되고서 친일 과거사 청산 바람을 용케도 피해갔고 또 개중엔 세상이 바뀌어 무슨 장차관이 되고서는 건국훈장을 챙기기도 했다.

왜? 열라 부자였으니 놀아도 됐으니깐.

기타 달랑 불알 두 쪽만 달고 나서 그 찢어지는 가난 면하겠다고 불나방처럼 뛰어든 일군이 있었으니

그리하여 용케도 성공했다 해서 면서기도 되고 일본군 장교까지 되고, 또 어찌어찌하여 일본과 만주 오가며 거부가 된 사람들은 모조리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런 사람들한테 후세 역사는 왜 중국으로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독립투쟁을 하지 않았으며 또 누구처럼 벤또 폭탄 지고서 종로경찰서로 돌진하지 않았느냐 돌팔매질이다.

또 그것이 아니라면 내 선친처럼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무지렁이로 소작농이나 하면서 살지 않았느냐 질타한다.

왜? 그래야 적어도 친일파란 소리는 듣지 않으므로.

나는 찢어진 가난을 대물림한 문중 소작농 아버지보다 차라리 친일파 소린 들을지언정 면서기인 아버지를 원했다.

왜 나는 부자여서는 안 되며 왜 나는 군인이 되어서도 안되며 왜 나는 군수여서는 안되는가?

날더러 왜 무장독립운동가여야 한다고 강요하는가? 

나는 홍범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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