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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육사 정통성 확립을 위해 홍범도를 불러들였다는 문재인의 발언

by taeshik.kim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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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국방부 앞 홍범도 흉상

 

육사 교정 홍범도 흉상 철거 혹은 이전 논란에 대해 문재인이 반대를 주창하는 생각을 공개로 표방했으니

2023년 9월 3일에 나온 그의 발언은 이 흉상이 어떤 목적에 따라 그의 정부에서 추진되었는지를 명료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주시해야 하니 그의 발언 전문을 보면서 분석을 가한다.


역사에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다시 글을 올립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제와의 독립전쟁을 선포한 이후 우리 독립군 부대가 일제 정규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거둔 큰 승리였습니다.

이 값진 승리들이 있었기에 우리 독립운동사는 무장독립투쟁을 중요한 축으로 세우면서 훨씬 풍부해지고 빛날 수 있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에서 연해주로 쫓겨나 소련 땅에 의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독립군 부대의 간난신고는 풍찬노숙으로 떠돌면서도 무장독립투쟁을 계속해 나가려는 불굴의 의지의 표상이었습니다.

그 시기 불가피했던 소련과의 협력을 이유로 독립전쟁의 위업을 폄훼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남루하고 편협한 나라로 떨어지는 일입니다.

 

15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홍범도 유해를 맞는 대통령 문재인. 2021. 8. 15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 모신 것은 우리 국군이 일본군 출신을 근간으로 창군된 것이 아니라 독립군과 광복군을 계승하고 있으며, 육사 역시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고 있음을 천명함으로써,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을 드높인 일입니다.

육사 생도들이 훈련한 탄피를 녹여 흉상을 만듦으로써 사관 생도들의 의지를 함께 담은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흉상 철거는 역사를 왜곡하고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입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을 따로 철거·이전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두 아들을 독립전쟁의 전투 중에 잃었고, 부인도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순국했습니다.

우리는 그 애국심과 헌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육사 차원에서 논의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흉상 철거 계획을 철회하여 역사와 선열에 부끄럽지 않게 해주기 바랍니다.


 

카자흐로 유해를 봉환하러 간 한국 특사단


이를 통해 우리는 권력이 어찌 역사를 만들어내는지 그 생생한 당대 장면을 목도한다.

이 만들기를 위해서는 파괴가 필수이니 그 파괴를 통해 새로운 역사상을 주물하고자 했음을 저 발언은 폭로한다.

무섯보다 문재인은 그의 흉상 건립이

우리 국군이 일본군 출신을 근간으로 창군된 것이 아니라 독립군과 광복군을 계승하고 있으며, 육사 역시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고 있음을 천명함으로써,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을 드높인 일

이라 자평한다. 곧 이것이 홍범도를 불러들인 이유인 것이다.

작금의 육사 혹은 그것을 뿌리로 삼는 대한민국 군대가 일본군 출신이 창설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그 정통성 정립에 투영됨을 본다.

이를 위해 일본군 출신들은 그 자랑스러워야 하는 한국사에서 치워버려야 하는 오물이다.

그 주축이 구체로는 박정희 백선엽 이한림 등등일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까닭에 정통성 확립은 필연적으로 역사분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카자흐를 떠나는 홍범도 유해



있는 역사 중 일부 혹은 상당부문을 부끄러움 혹은 수치로 치환하고 그것을 도려내고 그 자리다가 그것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전사前史 혹은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가탁한 부문을 땜질해 넣기 때문이다.

홍범도는 그렇게 해서 무장독립투쟁이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호명되어 불려나왔다. 그가 불려나옴으로써, 그가 육사 교정을 정좌함으로써 한국 육사는 뿌리가 일본군이 아니라 멀리 신흥무관학교로 거슬러 가는 발판을 놓고자 했음을 본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아는 역사란 권력이 당대의 목적에 따라 주물한 것이라 당대의 욕망을 짙게 반영한 이데올로기 구성물이다.

이 홍범도 건은 내가 그 생생한 상극하는 이야기를 동시상영으로 들을 수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지만, 내가 역사라 배운 것들이 실상 그를 둘러싼 무수한 역사상 중 권력이 임의로 그네들 욕망에 따라 주물한 어느 하나의 역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이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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