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뮤지엄톡톡 여송은입니다!
드디어 제가 전곡선사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예~~~~~!!!!
개인적으로 이한용관장님 sns를 팔로우 하고 있어 약 2년 동안 전곡선사박물관 포스팅을 많이 보았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저에게는 아주 익숙한(?) 박물관이었습니다. (이렇게 반복학습이 중요합니다.ㅋㅋ)
눈으로만 보았던 박물관을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전곡선사박물관을 다녀온 분들의 후기를 보면, ‘구석기 시대로 타임슬립한 것 같다.’라고 많이 말하는데요,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박물관에 있는 작은 사인물(안내판)부터 유물로 선사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실, 마치 구석기 시대에 착륙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박물관 건물까지 모든게 잘 어우러져 마치 구석기시대에 온 듯 즐겁게 놀았습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게 100m 전!
요이땅! 하고 박물관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활력넘치는 색깔 덕분에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신납니다. 길 중간에 삼엽충도 있으니 찾아 보시길!
“면면마다 정성이 담겨 있는 주먹도끼”
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렇게 딱!!
멋진 자태를 뽐내는 주먹도끼 5형제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전곡리 선사유적 하면, 아니 동아시아 구석기 유적을 이야기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인 유물인 ‘주먹도끼’입니다.
*모비우스의 가설 (Movius Line)
전기 구석기시대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나오는 유럽·아프리카와는 달리 동아시아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나오지 않는 찍개 문화권으로 보는 설.
네, 맞습니다. 학교다닐 때, 한국사 맨 앞장에서 배우는 바로 그 유물입니다.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되어 “모비우스 잘들어! 우리도 주먹도끼 문화권이라고!” 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주먹도끼의 모양을 보면 둥글 납작하며 양 면을 대칭적으로 깨뜨려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좌우대칭을 맞춰 주먹도끼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시절 구석기 사람들은 어떻게 일정하게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었을 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이한용관장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주먹도끼의 정형성에는 주먹도끼의 원재료인 석재의 형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주먹도끼의 모양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원재료가 선택되는 것은 주먹도끼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설계도에 적합하기 때문에 선택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왜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중, 32p.
구식기 사람들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날카로운 면으로는 분명 식물을 채집하거나 동물의 가죽을 벗길 때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먹도끼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영상을 보았는데, 오...가죽이 죽죽 갈라지더라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주먹도끼가 크고, 무거워 민첩하게 동물을 사냥할 때 사용하기에는 힘들지 않았을 까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위에 주먹도끼 사진처럼, 예쁩니다. 깊숙한 공간에 소중히 간직해 두고 싶기도 하고, 다른사람들이 많이 보는 공간에 자랑처럼 두고 싶기도 합니다.
또 누가봐도 공들여 만들었다는게 느껴져 도끼 면면마다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정성이 느껴 집니다. 혹시 “나랑 결혼해 주오” 할 때 주는 징표가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지금 인류라 부르는 호모사피엔스까지 약 700만년 동안 어떻게 진화 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 이라는 전시 이름처럼 그 시절(?) 감히 감도 안오는 ‘라떼는 말이야’ 시절 분들이 꼬꼬마 우리를 발맞춰 맞이해 줍니다.
실제로 옆을 걸어가면 내 옆으로 슥슥 지나가는데, 모형들을 워낙 사실적으로 만들어 진짜가 돌아와 반겨주는 갓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눈높이 보다는 살작 높게 전시되어 있어 우러러 보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뼈와 도구의 연대기】 전시를 보면서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인류의 머리는 점점 커지고, 도구는 점점 작아진다.”
이상 이한용관장님 말씀이었습니다.
전곡리 유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토층입니다. 전시실 안에서는 토층을 재현한 모습을 볼 수 있고, 박물관 주차장 쪽 윗길로 올라가면 실제 발굴 되었던 토층 단면이 잘 보존 되어 있습니다.
보존 때문에 관람객들에게 항상 공개를 하고 있지 않지만, 관장님 덕분에 토층 단면을 실제로 볼 수 있었습니다!!
관장님과 같이 토층을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계단 하나당 1만년씩 내려간다고 보시면 돼요.”
입니다.
캬!! 당시 전곡리 유적 토층을 발굴해주신 분들의 노고 덕분에 저는 이렇게 쉽게 한발 한발 내디디며 구석기 시대를 만나고 있습니다.
한 계단에 1만년씩이라니!! 얼마나 경이로운가!!
“동굴에 그림이 있어요!”
박물관에서 신기하고, 재밌는 전시 중 하나가 바로 산사시대 동굴벽화를 재현한 전시였습니다.
‘구석기 라떼는 말이야’ 시절 쇼베, 알타미라 등 프랑스와 스페인 등의 구석기 동굴벽화를 볼 수 있습니다.
관장님 말씀으로는 실제로 동굴을 탐험하는 것 처럼 동굴 쪽 조명을 어둡게 한 뒤 램프를 들고, 동굴 속 벽화를 찾아보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 하였다고 합니다.(지금은 코로나로 중단중이지만요.ㅠㅠ)
그 시절 구석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이런 그림들을 그렸을까요?
벽화레 그려진 그림 하나하나만 으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구석기 사람들과 예술은 뭔가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요, 동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런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피카소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보고 현대미술이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탄식했다 합니다.
(『왜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중, 220p.)
전시실을 보고 잠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번 포스팅에서 연천은 황톳빛이 주는 감동이 있다고 말 한 적이 있었는데요, 당연 전곡선사박물관도 예외는 아닙니다.
박물관의 황톳빛은 갈대입니다.
황금 갈대 사이로 은빛 박불관이 반짝입니다.
갈대밭 사이를 걷다보면 머리에서 꽃이 팡팡 터지는 원시인 ‘루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루시’ 앞이 박물관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또 이렇게 박물관을 배경으로 루시와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기도 합니다.
전곡선사박물관을 이 포스팅 하나에 담기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넘쳐 흘러, 나누어 담으려고 합니다.
박물관 건물, 기획전시 《석기시대 아이들》, 전시기법, 교육프로그램, 박물관 내 사인물, 문화상품, 이 모든 걸 기획하는 사람 등 소개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요, 천천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박물관에 같이 갔던 리승수군과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 친구가 말하길 ‘전곡선사박물관의 가장 큰 컨텐츠는 이한용관장님인것 같다.’고 했습니다.
구석기 시대가 주먹도끼의 돌 끝에서 시작이 되었다면, 전곡선사박물관은 이한용관장님과 더불어 그 위의 선배분들 후배분들의 손끝에서 만들어 졌고,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보시고 “오글거리게 왜그래.” 하실 수 있는데요, 확실한 건 그날 관장님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전곡선사박물관을 이렇게 재밌게 볼 수 있었을까? 감동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일은 사람으로터 나오고 사람에게로 전해지니깐요.
제가 3월 17일에 갔을 때는 박물관 앞에 있는 목련꽃이 피기 전이었습니다. 지금쯤이면 목련꽃이 활짝 피었을 것 같은데요, 목련꽃이 떨어지기 전 다시 가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 감사합니다.
추후 리뷰도 계속 업테이트 해 링크 걸어두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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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이한용, 2020, 『왜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https://youtube.com/user/jgp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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