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증학考證學이 발달한 청나라 때는 '차기箚記'라고 해서,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정리하는 저술이 유행했다.
조익趙翼(1727-1814)의 <이십이사차기二十二史箚記> 같은 게 대표적인데, 요즘도 공부하는 분들이 시도해봄직 하지 않나 한다. 어쩌면 그때그때 포스팅을 올리는 페북이나 블로그, 인스타그램이 그런 역할을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 청나라 말엽을 살았던 진례陳澧(1810-1882)란 인물이 저술한 <동숙독서기>란 차기를 우연히 만났다. 진례란 인물이 누구이고 이 책이 어떤 책인지는 아래 링크로 갈음하고자 하는데, 청대의 숱한 차기 중에서도 상당한 위상을 가지는 모양이다.
https://m.blog.naver.com/jeta99/30180513165
3. 완질은 좀 더 있었을텐데, 지금은 앞부분 9권 3책만이 남아 있다. 근데 희한하게도 이 책의 간기刊記가 눈길을 끈다.
광서光緖 연간(1874~1908) 베이징 유리창에서 간행한 판본인데, 족본足本이란 말을 쓰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중국에서 "온전한 판본"을 가리키는 서지학 단어란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광서 몇 년에 간행했는지, 유리창 어느 서점에서 간행했는지가 싹 빠진 것이다. 왜 이럴까? 가능성은 몇 가지 있다.
지금 중박에 있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목판에서처럼, 해를 거듭하며 판을 찍어내느라 해당 부분을 도려내고 새로 만들어 끼워 넣었더니만(알고 싶으신 분들은 맨 마지막 사진을 살펴보소서) 어느 순간 빠져버려 무심코 그대로 찍었을 수도 있다.
또 뭔가 이 책이 금서禁書나 뭐 그 비슷한 것에 걸려서 민감한 부분을 파낸 것일지도 모르고....
하여간 이 책이 청말 학술서 시장에서 퍽 잘 팔리는 책이었음에는 분명해보인다.
4. 어쩌다가 이 책이 조선으로 흘러들어왔을까. 어떤 선비가 이 책에 관심을 가졌을까?
장서인도 없고 필기흔적도 없어 뉘신지 알 길은 없지만, 제법 아껴 읽었던 듯 책장 끄트머리는 살짝 닳아있다.
저기를 만져본다면 그와 악수한 듯 싶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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