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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 이규보 아저씨도 아직 배가 덜 나온 열혈청년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그가 지은 작품이 그 유명한 <동명왕편>이다.
여기에는 고려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구삼국사>의 동명왕본기가 더러 인용되어있다. 그 중 한 대목을 보자.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를 따져 부용국(附庸國)을 삼고자 하니, 왕이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 년 묵은 것같이 했다.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지지 못하였다.
모세에게 쫓겨날 가나안인같은 우리의 불쌍한 군주 송양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건 그렇다치고, 주몽이 천 년 묵은 건물처럼 보이려고 썩은 나무로 집을 지었다는 표현을 보자. 썩은 나무로 집을 짓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
기원전 37년은 중국 한대이니 기와는 있던 시절이지만, 고구려에서 이때 썼다면 썩은 나무가 버티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았을텐데 말이다. 초가지붕이더라도 지붕이 꽤나 무거웠을텐데 -
주몽이 자기가 압사당할 것을 감안하고도 이랬다면 정말이지 강심장의 사나이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그쯤 배짱이 되어야 건국 시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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