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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동아시아 평행세계로서의 발해와 일본

by 초야잠필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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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이런 점에서 독특하다. 

신라는 통일 후 당제를 그대로 도입하지 않은 것 같다. 

통일 이전의 국제國制를 그대로 유지한 것 같고, 

과연 신라의 왕도가 장안성처럼 조방제가 제대로 지켜졌을까? 

모르겠다. 

필자가 보기에는

발해와 일본이 당대의 당나라의 시스템을 그대로 복붙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평행세계에 해당하는 것 같다. 

상경용천부는 일본의 헤이죠쿄, 헤이안쿄와 판박이다. 

당연히 당 장안성을 베껴서 그럴 것이다. 

나무위키 "상경용천부"에서

관제도 발해와 일본은 비슷하다. 

같이 당제를 베꼈기 때문에.. 

발해와 왜는 신라보다 당제를 베끼는데 별 부담이 없었을 것 같다. 

어차피 새로 산 공책에 글씨쓰는 작업이므로.. 

신라는 지금 경주 모양을 보면

암만 봐도 통일신라 때 조방제 였을 거 같지가 않다. 

아마 신라가 조방제가 엄격히 지켜지는 당나라 식의 왕성을 만들고 싶었다면

통일 후 천도를 해야 했을 것이다. 

일본도 천도가 없었다면 조방제고 나발이고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발해의 "해동성국"이라는 것도 

당제를 그대로 복붙한데서 나오는 문화적 자신감일 수 있다고 보는데

발해가 해동성국이었다면 일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둘이 비슷한 수준 아니었을까. 


 
*** Editor's Note ***
 
한국고고학도 중에서는 필자가 지적한 저와 같은 문제, 곧 신라는 왜 당이나 일본 고대 왕성과 같은 완연한 조방제가 보이지 않느냐 의문을 표시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을 심지어 그들에 견주어 후진하는 증거로 들기도 하는 장면을 보거니와 

그에 대해서는 일찍이 내가 말했듯이 전연 생성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지 기타 우수마발은 필요없다. 

중국이나 고대 일본은 새로운 왕성을 자주 옮긴다. 새로운 왕조가 등장하면 기존 왕조와의 차별성 부각 위해서 그런 일이 정식 패턴으로 자리를 잡았고 같은 왕조에서도 여러 번 왕성과 왕궁을 옮긴다. 

이 경우 문제는 이는 신도시 건설이라, 기존 도시 개발이 완성된 땅은 도저히 신도시 사업을 펼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유상으로 토지를 몰수해야 하지만, 이를 수용할 예산도 없고, 또한, 설혹 예산이 있다 해서 그렇게 하면 통치가 되겠는가? 반발 혹은 반란이 일어나서 자칫 왕조 자체가 망한다. 

그에 견주어 천년 왕국 신라는 천년 내내 줄곧 지금의 경주가 왕도였다. 다시 말해 천년 동안 줄기차게 유지한 왕조다. 

새로운 왕궁을 건설하고 싶어도 빈 땅 하나 없었다. 진흥왕 시대에 새로운 왕궁 만들어보겠다고 선택한 지점이 지금의 황룡사 터 자리라, 그곳이 빈 까닭은 잦은 홍수 침범 지역인 데다 늪지였던 까닭이다. 

그만큼 왕궁 왕성 건설은 힘들었다. 

고대 일본은 걸핏하면 왕도를 옮겨다녔다. 메뚜기떼처럼 이쪽에서 쓰다가 먹고 금새 버리고는 다른 곳을 찾아갔다. 당연히 빈터를 찾아야 했으며, 그 빈터는 터파기를 쏵 해서 바둑판으로 만들었다.
왜? 그래야만 불만이 적기 때문이다.

새로운 땅은 바둑판으로 구획해서 황족을 필두로 내로라하는 사람들한테도 각기 땅을 주었고, 기타 백성들도 먹고 살 땅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조방제가 나타나는 것이지, 그런 조방제가 경주처럼 천년 내내 왕도였던 땅에 어찌 나타난단 말인가?

출발 자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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