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조선의 수레가 말이 끌었는가 소가 끌었는가는
솔직히 필자로서는 백프로 확신은 못하겠다.
고조선 유물을 보니 세형동검과 수레 부속이 나오는 무덤에서
말 재갈이 함께 나온 경우가 있어서다.
단 이것이 그 수레를 말이 끌었다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고구려의 예를 보면
서기 4세기 이후에는 귀인들의 수레는 소가 끌었던 것은 확실해 보이고,
이 시점이 되면 말과 소는 확실한 업무분담이 시작된것 아닌가 싶다.
말은 기승용으로
소는 귀인의 자가용끌기로.
아마도 김단장께서 올린 글처럼
북위에서 고구려로 전해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전통이 말-소의 전파과 함께 일본에도 전해져
그 모양 그대로 헤이안시대에도 이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가끔 보고되는 백제와 신라 왕성이나 성에서 확인했다는 수레 바퀴 자국
틀림없이 이 바퀴자국 근처에는 이 수레를 끌던 동물의 발자국도 남아 있으리라 보는데
이것이 소일지 말인지 추후 발굴시에는 반드시 확인해 보시기를 부탁한다.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아시아 평행세계로서의 발해와 일본 (0) | 2023.12.20 |
---|---|
60세 이후는 단행본으로 승부를 내야 (0) | 2023.12.19 |
일본 헤이안 말의 귀인용 소 수레 (0) | 2023.12.18 |
안악 3호분 행렬도 (0) | 2023.12.18 |
소위 식민사학에 대하여 (0) | 2023.12.17 |
댓글